끈/ “청주시민이 자랑스러워하는 박물관으로 만들고파”
이양수 국립청주박물관장 이순신 장군 만나 ‘리더십’ 조언 듣고 싶어
[동양일보 박현진 기자]어린 시절 박물관에 가서 전시물 관람하는 게 제일 재밌었다. 요리 보고 조리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박물관을 놀이터 삼아 라면 먹어가며 놀았다. 자연스레 고고학과에 진학했고 27살 어린 나이에 박물관에 입사했다. “내 인생은 처음부터 박물관인으로 살기로 정해져 있던 것 같은 느낌”이라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는 사람, 그는 이양수(49) 국립청주박물관장이다.
현재 전국의 13개 국립박물관 관장 중 가장 젊다. 2021년 청주박물관장 공모 당시에도 응모자 중 가장 어렸다. 그런 자신이 선임된 이유를 이 관장은 청동기시대를 전공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금속활자를 직접 주조해 ‘불조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유적지 흥덕사지가 있고 그곳의 청동 비루가 있고, 공림사, 사뇌사의 청동 향완, 용두사지 철당간 등 청동 유물이 가장 많은 청주박물관이 금속특화박물관이었기에 적임자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젊은’ 관장답게 취임하자마자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박물관 문턱을 낮추기 위해 4D 시네마를 무료로 운영하고 다양한 세미나와 공연을 유치하고 어린이박물관을 활성화하고 코로나19로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던 상설전시관도 재개관했다. 오래된 각종 사인물들을 재정비하고 지난해 열린 화제의 이건희 컬렉션 ‘돌의 정원’도 새롭게 단장해 오는 10월 다시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 상설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록, Map of you’ 특별전시는 ‘사소한 듯하지만 역사로 남는’ 기록의 중요성을 체험과 병행함으로써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기획했다.
그렇게 이 관장의 하루는 박물관에서 시작해 박물관에서 끝난다.
그는 박물관 입사 동기로 만난 아내 김미도리(45·국립한글박물관 근무)씨와의 사이에 고3, 중1 딸 둘을 두고 있다. 아내의 이름에 의아해하자 이 관장은 지레 손사래를 치며 “일본 사람 아녜요. 국문학 전공하신 장인어른이 ‘미도리(美道梨)’라는 한자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저도 첨엔 일본 여성인 줄 알았어요” 하며 웃는다.
그러더니 이내 입꼬리가 올라가고 핸드폰 속 가족사진을 보여준다. 단란해 보인다. 그럼에도 ‘좋은 아빠’는 아니었다는 그는 공무원 5년 순환제로 지역을 떠돌다보니 아침, 저녁 밥상에 같이 앉지 못한 시간이 많았다고 토로한다. 특히 큰딸은 ‘어~’하다 보니 어느새 훌쩍 커버린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아리단다.
이 관장은 평일엔 박물관 관사(청주시 수곡동)에서 지내다 금요일 저녁 가족이 있는 서울로 올라간다. 주말에 빨래, 청소, 식사 등 가사노동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자신을 ‘100점 남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내 입장에선 ‘일주일 중 이틀’만 일하는 ‘50점짜리’일 수도 있다며 머쓱해한다.
그의 미소 너머로 조금 전 방문 기자 대접을 위해 직접 찻잔 설거지를 하고 있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도 했다. 다름 아닌 이순신 장군. 열악한 여건과 오합지졸을 데리고도 어떻게 매번 승리할 수 있었는지, 그 리더십은 어떤 건지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삶의 세가지 축인 ‘일·공부·가족’ 중 크게 방전의 위기를 맞은 적 없는 그이지만 100여 명이 넘는 박물관 가족들을 이끌고 나가기에 부족함을 느끼는 데서 오는 성찰이다.
늘 ‘최선’을 다하지만 ‘최고’인지는 의문이라는 이 관장.
요즘 들어 젊은 직원들에 비해 ‘앎’은 더 많을 수 있지만 ‘감’은 떨어진다는 생각에 정보나 지식 전달은 하되 디자인 등 감각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직원들의 뜻을 존중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계를 느낀다고 해서 포기할 순 없다. 그는 제한이 있으면 그 안에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 또한 자신의 일이라는 걸 안다.
박물관 내 테니스장을 헐어 만든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것을 보며 이 관장은 더 큰 꿈을 계획하고 있다. 가깝게는 금천동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 명암저수지를 거쳐 청주박물관을 들러갈 수 있게끔 아름다운 거리 조성도 추진할 계획이다.
‘청주박물관 참 좋아요’라는 말이 가장 듣고 싶다는 이 관장은 그의 어린 시절처럼 누구나 즐기고 누리는 ‘놀이터’로서의 박물관을 만들고 그가 놓은 징검다리를 건너올 또 다른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경주시민이 자랑스러워하는 경주박물관처럼 청주시민이 자랑스러워하는 청주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이 관장은 75년 서울 출생이지만 자란 곳은 부산으로, 부산대 고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박물관정책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 고고역사부 등에서 근무했고 국립김해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했다. 관장으로서의 첫발을 청주박물관에서 내딛고 있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