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멈춤 없는 기획 후 순수 창작에 전념하고파”

이상봉 청주시립미술관장

2024-07-14     박현진

 

[동양일보 박현진 기자]“동네 가게로 머물지 않으면서 위상도 제고하고 세계화를 꾀하는 접점을 찾아내는 일이 어렵지만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것이 곧 시립미술관의 정체성이자 역할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 그는 2019년 9월 취임해 행정적으로나 운영면에서나 어수선했던 미술관을 정상궤도로 올려놓으며 5년째 미술관을 이끌고 있는 이상봉(61‧사진) 청주시립미술관장이다.

이 관장은 시립미술관은 지역 미술사를 연구하고 지역작가를 발굴하고 조명하는 일에 비중을 두지만, 지역작가에 대한 지나친 치중은 자칫 시립미술관이 동네 가게로 남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글로벌 전시 유치와 지역작가 발굴을 병행해 지역작가들도 보람을 느끼고 시민 눈높이를 충족시켜가며 미술관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지론이다.

물론 해외 유명작가를 섭외하거나 국제전을 유치하기엔 현재 미술관 예산으론 한계가 있지만 시선을 돌려보면 방법이 보인다고 했다. 일례로 현재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청주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의 ‘청주가는 길’ 전시를 꼽았다.

 

실제로 지난 4일 강익중 작가 오픈식에는 전국 언론사 기자단이 버스를 대동하고 내려와 취재열을 불태웠다. 자연스레 전국의 시선이 집중되면서 전시 초반 관람객이 평일에도 200여 명이 몰리고 청주시립미술관 위상이 제고되는 시너지 효과를 봤다.

분야를 넓혀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그가 2021년 코로나상황에서 기획한 전시 ‘빛으로 그린 신세계’는 회화, 설치, 뉴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며 개관 이래 2만여명의 최대 관중이 다녀가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그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건축, 미술이 되다’와 지난 5월 ‘경이로운 여행 프랑스 프락 컬렉션 특별전’ 또한 전국적인 관심과 시선 집중의 기획전시로 호평받았다.

이 관장은 내달 말이면 임기가 만료된다. 그는 현재 박물관에서 진행되는 관장 공모에 서류를 접수하고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또 하고 싶은 게 있다는 이 관장.

가칭 청주프로젝트 추진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의 협업으로 로컬 작가들과 창작스튜디오 출신의 주목받는 작가들의 그룹전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다양한 기획력을 발휘하는데 멈춤을 모르는 이 관장이지만 그의 역량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음을 토로한다.

우선 미술관 건물의 구조적 문제다. 옛 청주KBS 건물을 개조하다 보니 항온·항습 시스템이 24시간 돌지 못하는 기술적 문제가 돌출되고, 최소 5m는 돼야 하는 전시실 층고가 낮아 설치미술이나 영상 등의 대형작품 전시에 한계가 있다. 또 미로를 방불케 하는 복잡한 구조는 입출구 방향이나 층간 연결이 원만하지 않아 관람객의 동선을 어렵게 만든다.

전문인력 부족과 처우문제도 걱정거리다.

현재 청주시립미술관은 본관 이외에 대청호미술관, 오창전시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등 3곳의 분관을 운영하고 있다. 총 4곳의 미술관 전시와 기획을 9명의 학예연구사가 꾸려나가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직급도 낮은 처우에 과중한 업무가 자칫 의욕상실로 이어질까 안타깝다.

 

이 관장은 부인 홍연숙(57‧현직 미술교사)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매일 가족이 있는 대전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퇴근 후 1시간씩은 어김없이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주말이면 등산을 즐기고 교회에도 나간다. 아직 미혼인 자녀들도 미술 전공이다. “우리는 미술가족”이라며 해맑게 웃는 그는 관심사가 같은 가족들과의 대화가 즐겁고 함께 다니는 가족여행이 만족스럽다.

미술관을 운영하는 일이 늘 긴장의 연속이라는 이 관장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직을 내려놓으면 원래 전공인 창작을 하고 싶다”며 “인생 후반, 그때쯤이면 욕심도, 사심도 다 내려놓고 오로지 순수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청주시립미술관의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질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 관장은 62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중앙대와 동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독일 베를린 국립 조형예술대학에서 조형미술 마이스터슐러 학위를 취득했다. 2006년 ‘종촌 가슴에 품다’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주로 충청권에서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수차례 기획‧추진했다. 2014~2018년 대전시립미술관장을 역임하며 아시아태평양현대미술전, 21세기 하이퍼리얼리즘전, 2018 대전비엔날레 등을 총괄 기획했다. 박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