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이야기-12/운천동뜬구름동네기록관(하)
김기성 운천동 뜬구름 동네기록관 대표
[동양일보]‘문화를 만들어가는 동네’를 꿈꾸며
“운천동은 원래 논이었어요. 택지개발이 되면서 집을 새로 지어 들어왔기 때문에 처음엔 허허 벌판이었죠. 당시만 해도 운천동이 부자 동네로 소문이 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니까 좋아지지 않겠어요?” - 2021년 운천동 주민 인터뷰 중
2021년 운천동에서 동네기록관 사업을 시작하며 마을의 정체성과 변화상을 기록해보자는 취지에서 운천동 리서치 활동을 시작했다. 첫해에는 도시재생사업의 막바지 주민의견수렴 절차가 진행 중이던 시기로 추진을 앞둔 사업들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원주민, 이주민, 그리고 초창기 공방 운영자 등 각기 다른 입장과 시각을 지닌 인물들을 섭외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은 도시재생사업으로 인해 마을이 한결 쾌적해지고, 주민편의시설 등 환경이 개선되는 것에 반가움과 기대감을 표하면서도 자칫 마을의 옛 정취가 훼손되는 것에 대한 우려와 임대료 상승 문제, 주민의견수렴 절차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특히 오랜 기간 사업이 진척되지 않고 지지부진하다보니 대다수의 주민과 상인들은 사업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한 태도로 보였다. 이듬해가 되어서야 도로정비, 지중화사업 등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바닥이 파헤쳐지고, 가로수 일부가 잘려나가고, 보도블록이 새로 깔리는 등 마을 전체가 공사현장으로 변했다. 주민과 상인들은 그제야 도시재생사업에 대해 한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각 사안마다 찬반의견으로 나뉘고,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며, 민원을 제기하는 이들도 나타났지만, 계획된 일정대로 공사는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영감을 주는 것들이 많은 동네인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 바랜 것들이나, 켜켜이 쌓여있는 시각적 흔적들을 찾는 재미가 있어요.” - 2022년 청년창업가 인터뷰 중
운천동 곳곳이 도시재생사업으로 어수선한 와중에 한켠에서는 카페와 디저트 가게, 소품숍, 공방 등 새로운 공간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었다. 20~30대 청년창업가들은 한 땀 한 땀 직접 자신만의 아늑하고 이색적인 공간을 연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은 운천동이 가진 편안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느긋한 자세로, 감정에 쉽게 치우치지 않고, 일상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소위 슬로우 라이프를 운천동에서 실천하고자 했고, 그러한 라이프스타일에 공감하는 사람들끼리의 지극히 사적인 연대도 시작되었다. 영업을 마치고 함께 술한잔 하며 친목을 쌓거나 함께 스터디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는 등의 소모임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우리 마을에는 직지라는 훌륭한 기록문화유산이 있으니, 기록을 바탕으로 한 운천동만의 특색있는 마을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어요.” -2023년 구루물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정예숙 이사장 인터뷰 중
도시재생사업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지역상권 활성화에 방점을 둔 크고 작은 축제와 행사, 공공사업 등이 본격 추진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운천동 주민과 상인, 문화예술 종사자 간 소통과 연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공동체의식, 상생의 방법론 등 여전히 극복해야할 차이들이 잔존하고 있지만, 이른바 마을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리고 때마침 도시재생사업의 마침표이자, 향후 마을공동체의 활동공간으로 활용하게 될 ‘구루물 아지트’가 개관을 앞두고 있어, 그곳을 거점으로 소통과 연대의 다양한 활동들이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길이 넓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더라도, 더 머무르고 싶은 동네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결국 ‘사람’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지난 3년간 리서치활동을 통해 다시 깨닫는다. ‘구름이 모여드는 우물’이란 운천동의 지명처럼 사람들이 모여 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동네가 되어가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