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119 vs 적수들
정남구 충북소방본부장
[동양일보]119는 사시사철 적수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첫 번째는 불이란 놈으로 주로 겨울철에 왕성하게 활동한다. 원래 프로메테우스란 신에게서 선물 받은 놈이다. 잠시라도 한눈 팔면 잽싸게 돌변해 해를 끼치는 아주 골치 아픈 놈이다. 예로부터 아궁이랑 굴뚝을 단속했고, 근자에도 전기·가스 점검, 위험물·비상구 단속을 시시때때로 하는 것이 이놈을 막기 위함이다. 그래도 이놈이 침입해 오면, 소화기·소방차·소방헬기 할 것 없이 모두 동원하여 포위 섬멸해야만 한다. 작년 우리나라에서 119와 사투를 벌인 횟수는 무려 3만8857건이다.
두 번째는 산불이란 놈으로 주로 봄에 활동한다. 불과는 생김새가 매우 흡사하나 나무만 즐겨 먹는 편식쟁이라 산에서만 산다. 서식지 환경이 나빠져 한동안 자취를 감추듯 했으나 근자의 식목일·육림의날에 힘입어 더욱 활동이 강해지고 있다. 산행 시에 화기 휴대 금지와 산불캠페인을 통한 예방조치도 중요하지만, 대적 시에는 초기부터 소방헬기를 동원하여 이놈의 세력을 꺾어야 한다. 특히, 바람이 불면 힘을 얻고 더욱 거세게 날뛰기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작년 119와 사투를 벌인 횟수는 1519건이다.
세 번째는 물이란 놈으로 주로 여름철에 활동한다. 당초 불·산불과 싸울 때는 아군이었는데, 최근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아 집중호우·극한호우로 변신하여 막대한 해를 끼치는 놈이다. 무엇보다 산사태·하천·지하공간 등 취약지역 사전점검을 통해 피해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대적 시에는 안전장비를 확실히 갖춘 후 여러 기관과 함께 대응해야 효과적이다. 작년 119와 사투를 벌인 곳은 모두 9973곳이다.
네 번째는 산악사고·안전사고란 놈으로 가을에 활동이 가장 왕성하다. 최근 워라밸 추세에 맞추어 급성장한 놈으로 단풍이 물들 무렵 그 세력이 절정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소규모의 해를 가하나 행사장 등 대규모 피해도 있어 주의 관리가 요구된다. 적합한 행사계획의 수립·이행과 철저한 안전수칙의 준수가 예방의 핵심이다. 대적 시에는 사고자의 신속한 신변 확보와 주변 사람들의 신고·도움이 중요하다. 작년 119와 사투를 벌인 곳은 산악사고 현장만 해도 1만807곳이다.
불·산불·물·산악사고 그리고 겨울·봄·여름·가을, 사시사철 119는 바람 잘 날 없다. 오늘도 출동벨이 울린다. 하지만 가슴속 119의 긍지를 아로새긴 대원들은 사투의 장으로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