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이야기-17/중앙동동네기록관(상)
김민재 키핀 대표
[동양일보]올해부터 키핀의 중앙동 동네기록관은 지역도시재생협동조합과 함께 청주도시재생허브센터의 한 공간에 자리잡고 도시재생동네기록관으로 재탄생했다. 새로운 4명의 아키비스트가 모였다.
사물이나 사건, 풍경에 의미를 담아 영상기록을 만들어 낸다. 도깨비를 찾아다닌다. 중앙동의 도깨비들은 영상매체로 재생되며, 다시금 도시의 의미를 재생시킨다.
기록은 무언가를 갈무리하여 특정 신호로 바꾼 후, 매체에 남기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특정 신호가 꼭 문자나 숫자일 필요 없으며, 매체가 반드시 종이나 평평한 판일 필요도 없으며, 매체에 남겼을 때 오늘날 일컫는 ‘저장’의 의미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서두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허상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을 빤히 들켰다. 도깨비 같은 것들을 기록하고 싶다. 오래되어 한사람 마음에 오래 남는 이야기들.
오래된 것들은 참 좋다.
오랜 시간 어떤 사람과, 어떤 장소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들. 그런 것들이 우리의 일상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특별하지도 않고, 소중하지도 않은 그저 머물러져 오래된 것들.
중앙동, 특히 중앙상가에는 그러한 것들이 수없이 남아 있다. 삶에 급급함이 묻어나는 수집물들, 혹여 쓰임새가 있을까 버리지 못하고 세월의 먼지와 함께 켜켜이 쌓여 녹슬고 낡은 잡동사니들. 그것들이 밤마다 도깨비가 된다.
도깨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사연이 있다는 것이다. 흰머리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우리 아들이 쓸 수도 있다며 가져다 두신 말라버린 페인트통, 수선집 할아버지의 구박을 받으며 상가 한편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된 매대, 찾는 손님 없는 시장에 매일 모여 화투를 치시는 할머님들이 더 이상 덮지 않는 담요. 어떤 것은 주인이 있고 어떤 것은 주인이 없다. 그러한 문제와 별개로 이곳에서는 어떤 것도 함부로 버려지지 않는다. 물건 하나하나 아끼며 살아온 분들의 삶의 습관일 수도, 피해를 주기도 받기도 싫어하는 무관심하나 개인주의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이곳의 물건들은 버려지지 않고 밤마다 도깨비가 된다.
밤마다 모인 도깨비들이 마음껏 자기 이야기를 떠드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옛날 만화영화 ‘깨비깨비’의 한 장면처럼 둥글게 모여 앉은 담요 도깨비, 고장난 프린터 도깨비, 바람 빠진 자전거 도깨비들이 내가 더 오래된 도깨비라며 으스대는 모습.
사람도 물건처럼 그저 머물러져 오래될 수 있을까.
곧 오래됨이 특권인 시대가 오리라 믿는다. 주인이 있든 없든, 특권이 될 오래된 이야기를 잘 모아 항아리에 담아둔다. 도깨비를 만든다. 술을 담그는 것처럼 ‘허상’을 담아 익혀둔다. 잘 익은 이야기는 언젠간 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