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그리운 시절

정명숙 수필가

2024-08-29     동양일보
정명숙 수필가

[동양일보]몇 달 사이 눈에 띄게 쇠약해진 구순의 엄마가 아이처럼 울고 있다. 큰며느리가 오자 더욱 서럽게 울며 넋두리를 쏟는다.

“나는 엄마도 없고 니가 엄마 같은데 늦게 오면 겁나고 무서워”

올케는 시어머니가 주간 보호소에 다녀오면 아기를 대하듯이 기저귀도 갈아주고 목욕도 시켜 드린다. 틈틈이 집 안 청소와 빨래, 간식까지 챙긴다. 그러니 엄마처럼 생각하는 게 당연한지 모른다. 며느리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한다.

거동이 불편한 요즈음은 열일곱 살까지 살던 친정집을 그리워하고 오래전 저승으로 떠나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단다. 현재보다는 과거의 기억이 생생한가 보다. 그런 엄마를 차에 태우고 외가로 향했다.

엄마의 집이었던 외가로 가는 길은 왕복 4차선 도로가 생기고 논밭이던 곳에 오래전 교원대학교가 들어섰다. 주변은 몰라보게 변해 있다. 길을 따라 아파트단지와 음식점이 즐비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여기가 어디냐고, 어디 가느냐고 연신 묻는다.

동막골을 지나 외가인 오룡골에 도착했다. 세월이 흐른 만큼 외가도 늙고 병들어 곳곳이 허물어져 있다. 안마당 한쪽에 새로 지은 집마저 오래되어 허름하다. 가을이면 농작물을 쌓아놓던 바깥마당은 누군가 채소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김장거리로 심어놓은 무와 여린 배춧잎이 바람에 살랑이고 있다. 마당 끝에서 마주 보며 살던 이웃들은 도시로 떠나 사람도, 초가집이 있던 자리도 흔적이 없다. 간이역에서 내려 십 리가 넘는 길을 걸어야 하는 오지였는데 시내버스가 집 앞을 지나 바쁘게 달려간다.

외가를 떠올리면 고향과 같이 아늑하면서도 봄볕처럼 따스하다. 식구들이 모두 떠나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는 어린 날의 기억만 먼지처럼 고요하다. 그 많던 식구들과 이곳에서 만난 정답던 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어디선가 환한 얼굴로 불쑥 나타나지는 않을까.

초등학교 3학년부터였다. 방학이면 거르지 않고 외가엘 갔었다. 집에서 십 분 거리에 작은 간이역이 있어 완행열차를 타고 두 정거장을 가서 내리면 월곡역이다. 기차에서 내려 오룡골 외가로 가는 길은 오일장이 열리는 미호장터를 지나 구불구불한 논길을 따라 걷다 야트막한 야산을 넘기도 하는 먼 길이었다. 어린 나에게는 두렵고 힘겨운 행로였다. 동막골을 지나 산허리를 돌아 동네 고샅길로 들어서면 달큼한 옥수수 냄새가 먼저 나던 곳, 저만치 보이는 외가를 바라보면 발걸음이 빨라졌었다. 싸리문 앞에 앉아 외손녀를 기다리고 계시던 할머니가 나를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드시는 걸 보면 두려움에서 벗어났다는 반가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먼 길을 혼자 찾아오는 열 살 손녀가 기특하다고 연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삶은 옥수수를 채반에 담아 주시던 할머니.

맏이인 나는 어릴 때부터 종종 엄마의 화풀이 대상이었다. 시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에 힘겨워하던 엄마는 첫애부터 딸을 낳아 더 미움을 받았다. 아래로 남동생이 태어났지만, 할머니의 편애는 참으로 심했다. 방학이 되면 데려온 자식처럼 외가로 보내는 어미의 아픈 사랑이었던 나를 외사촌과 이종들의 시기와 질투를 외면한 채 할머니와 이모가 감싸 안았다.

온전한 내 편이 있다는 건 어린 나에게 세상에 무서울 게 없다는 걸 가르쳐 줬다. 본가에서는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접받지 못해도 외가에서는 둘도 없는 귀한 손녀였다. 다섯이나 되는 외사촌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아 방학 내내 머물러도 집 생각이 나지 않았다.

누가 흔들지 않아도 생이 흔들릴 때면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되돌아가 머물고도 싶다. 그것은 내일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었다. 나의 깊은 곳에 잠재된 외가의 기억은 따듯한 봄날이었기에 삶의 질곡을 견딜 수 있게 한 강력한 생존조건이 되었다.

차로 돌아왔다. 엄마는 잠들어 계신다. 당신의 옛집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그리워하면서 알아보지 못하신다. 어쩌면 변해버린 풍경에 실망하는 것보다 차라리 몰라보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 엄마 옆 빈 좌석에 오룡골의 추억이 이곳을 잊지 말라는 듯 서글픈 표정으로 올라앉는다. 엄마는 꿈속에서 열일곱 살 소녀로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