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존재의 육성과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고향 서천이야기
박광배 시인, 시집 『서천 가는 길』 출간
그의 노래를 들어 보셨나요.
끊어질 듯 이어질 듯 가만가만 우는 귀뚜라미
눈먼 악사가 떠나는 우리를 전송합니다.
어매 치맛자락 잡고 군산엘 갈 때나 역전에서나
사람 모이는 곳이면 언제나 울리고 있었지요.
그 고물 기타는 내가 커서
푸른 제복을 입고 나왔을 때도
거기 그렇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보청기를 낀 노인네가
기타 가락에 덩실덩실 춤추는 걸 보고
하마터면 울 뻔도 하다가
무심코 주머니를 뒤져 그의 손가방에
천 원 한 장을 넣어 주고는
부두로 부리나케 빠져나왔었지요.
약장수도 사람은 다르지만 구성지게 입품을 팔었쌓고
다라이 가득 생선이랑 감 배추 혹은 감자
멸치를 인 아주머니 행렬은 거기 그대로 있는데
그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그뿐이 아닙니다.
눈먼 그가 끊어질 듯 이어질 듯
귀뚜라미 노래를 부릅니다.
죽은 어매가 둘러선 사람들 틈에 보입니다.
한쪽 구석에 할아버지도 단장을 짚고 계시는군요.
어딘가 있을 겁니다.
초롱한 눈망울 굴리며
두리번거리는 어린놈.
큰 머리를 놀림 받던 맑은 눈.
시 ⌜장님 악사 -장항 군산 간 뱃전에 서서⌟ 전문
박광배 시인의 시집 『서천 가는 길』이 도서출판 상상인에서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1부 내 그리운 고향, 2부 家傳, 3부 개밥바라기, 4부 건지산 범바위로 구성됐다.
전상기 문학평론가는 “시인의 시적 화자는 무격巫覡 소리꾼의 빙의憑依를 복화술複話術로 발화함으로써 외계 존재의 육성과 자신의 목소리를 뒤섞어 여러 갈래의 목소리를 개별화해 조화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다”며 “두 목소리의 분별과 혼합은 외계의 사정은 소리대로 살리면서 화자의 줏대와 역사의식, 시적 기율을 보여준다”고 소개한다.
박 시인은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 생각하니 마음만 급해져 세상에서 내 가진 유일한 기술, 시 쓰는 짓거리로 들은 이야기, 몸으로 때운 이야기 중 만사 제치고 우선 고향 이야기부터 남긴다”며 “평생 괴롭힌 시 귀신이야 어디서 굶어 뒈지라지. 이제 거의 돌아가셨다. 어디에 여쭐 수 없이 기억을 쥐어짠 기록이다. 시의 형식을 빌렸으나 시인지 모르겠다. 그런 시절도 있었더라 자손께 전하는 절실함이다. 내가 아는 만큼 썼다”고 출간 소감을 전했다.
박광배 시인은 1959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1984년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시선집 시여 무기여에 「용평리조트」 외 1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에 나는 둥그런 게 좋다 서천 가는 길이 있다.
서천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