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심천에서 부르는 강변의 노래
양선규 시인·화가
[동양일보]지난주 토요일(8월 31일), 고 윤중호 시인 20주기 추모 문학제가 영동문학관에서 있었다. 시인의 유족과 많은 문인들이 참가하여 시인을 기리며, 시인이 일군 시의 밭을 함께 걷느라 늦은 밤까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시인의 고향에서 읽는 시편들과 시인의 얼굴이 어른거려 행사가 끝난 후에도 몇은 강가에 앉아 금강 바라보며 시의 행간에서 가을 바람맞으며 오랫동안 머물다 왔다. 강물에는 달빛 머물고 흐르는 물결은 어두운 밤이 되자 버드나무숲 아래에서 반딧불이와 함께 시의 숲을 노란빛으로 물들여 놓고 노래를 불렀다.
돌아가라 돌아가라 / 펑펑 내리는 눈 맞으며 / 금강에 서면, 고향, 저녁 안개 속으로 / 빈 들녘은 저물어가고, 나는 / 많은 것을 버리며 살아왔지만 / 고향 강만큼 낮게 흐르지 못하고 / 뒷구리 감나무처럼, 허허허 / 굽어웃지 못했다, 슬금슬금 / 완행열차만 서는 곳이지만 / 할머님은 돌아가시고, 객지에서 돌아온 / 경운이 형도 다시 객지로 / 돌아갈 채비만 하는 곳 / 잡풀 사이로 부는 / 강바람을 따라, 나는 또 / 어디로 돌아가라고 / 자꾸만 내려 쌓이는가 / 눈, 눈, 눈
윤중호 시인의 시 '고향, 다시 강가에' 전문
저무는 빈 들녘은 쓸쓸하다. 느리게 완행열차만 이따금씩 쉬어 가는 심천역은 한가롭다. 할머니도 세상을 떠나시고 동네 형은 또 어디론가 자꾸만 떠나가려고만 하는 고향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살아오는 동안 많은 것을 버리고 살아온 것 같지만 고향의 강물처럼 자신을 낮추고, 감나무처럼 고향을 살피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있다. 강바람 따라 눈은 내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향을 염려하며 차곡차곡 쌓이는 들녘의 눈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시울이 뜨겁다.
윤중호 시인은 1956년 영동군 심천면에서 태어났다. 동향인이면서 대학교 선배이기도 한 시인과의 인연은 끊어질 듯하면서도 고향 영동에서 또는 대전에서 간간이 이어졌는데, 특히 영동의 금강변 퓨전 카페에서 최하림, 정진규, 윤중호, 안용산, 김완하, 양문규 선생 등과 함께한 1999년 초겨울, 세기말 모임에서 나눈 따뜻한 온정과 가는 천년을 아쉬워하며 함께 부른 노래가 기억에 남는다.
시인은 1983년 ‘삶의문학’과 1985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는 <본동에 내리는 비>, <금강에서>, <청산을 부른다> 등을 펴냈다. 2004년 췌장암으로 지금의 내 나이보다 열네 살이 어린, 마흔여덟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남겨진 부모님(윤기만, 박유순)과 아내(홍경화) 두 아들(석의, 태의)과의 이별이 얼마나 슬프고 컸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추석이 코앞이다. 윤중호 시인이 고운 추석빔 차려입고 심천 간이역에 내려 금방이라도 플랫폼 빠져나와 고향의 친구, 시인들과 덥석 손을 잡고 헛헛한 웃음 지으며 술잔 나누고 함께 노래라도 부를 것 같은 가을이다.
윤중호 시인이 작고한 다음 해, 유고 시집 <고향길>(2005)이 출간되었으며 2022년, 시선집 <詩>가 간행되었다. 시인은 젊은 나이에 떠났지만 '시'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리움으로 남았으니 심천에서 부르는 강변의 노래는 그칠 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