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달빛잔치

문상오 소설가

2024-09-18     동양일보
문상오 소설가

[동양일보]시끌벅적했다. 평소 같았으면 외진 곳이어서, 새소리나 들리고 가끔 고라니 같은 산짐승이나 서성거렸을 텐데 오늘은 사람들로 붐볐다. 날도 좋았다. 만삭에 가까운 상현망간의 ‘배부른달’이 동산에 둥두렷했다. 추녀 끝에 걸터앉은 남실바람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연신 엉덩이를 들썩였다.

“큰 누님! 준비 다 되었는데요. 어머님 모시고 나오시죠?”

스위치를 점검하고 있던 둘째가 조명등을 켜자 어슴푸레하던 정원이 빛의 향연으로 출렁거렸다. 잘 다듬어진 잔디마당엔 야외용 테이블이 길게 놓여 있는데 그 위에는 케이크와 과일, 샴페인은 물론 갖가지 진미로 가득했다.

현관문이 열리자 딸의 부축을 받으며 노인이 걸어 나왔다. 추녀 끝에 앉아있던 남실바람이 그예 못 참겠던지, 덩실덩실 잔디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그 바람에 플래카드가 펄럭했다.



'사랑하는 어머니! 이일복 여사님 고희연'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머니의 턱밑에 앉은 딸이, 어머니보다 더 늙어 보였다. 딸이 더 늙다니! 사실이었다. 이 여사의 큰딸, 은옥은 올해 72세였다. 그러니까 어머니보다 이태를 먼저 태어났다는 말인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인가. 자식 먼저 보낸 부모는 있어도 부모보다 먼저 태어난 자식은 있을 수 없는 법 아닌가.

자세히 보니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끝에 앉은 막내는 양복 차림으로 노숙하게 차려입긴 했지만, 학생티를 못 벗었다. 그렇다면 예순 넘어 생산했다는 말인데…. 쉰둥이는 봤어도 예순둥이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얼굴이나 외양도 제각각이어서 도저히 한 형제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 누구도 어색해하지 않았다. 어색해하기는커녕 다른 집 어느 형제보다 더 돈독하고 다정해 보였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칠순 잔치를 열게 되었네요. 우리 어머님,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백수, 아니 천수 만수 하시라는 뜻에서 한 잔 올리겠습니다.”

큰딸 은옥이 잔을 채우자 와! 하며 모두 손뼉을 쳤다.

샴페인으로 목을 축인 이 여사가 자리에 앉은 오 남매를 일일이 불러세웠다. 앞으로 불려온 자식들에게 샴페인을 채워주었다. 손이 떨려 쏟는 게 더 많았지만 다들 기꺼워했다.

“내 딸 은옥이, 은경이, 아들 은수, 은상이, 막내 은규야 고맙다. 저승에서도 우리 은범이, 너희들 보면 얼마나 기뻐하고 환해 할지… 그래, 고맙고 고맙다. 이런 잔칫상을 받고 보니 기쁘기 그지없고, 은옥이 말마따나 한 백 년은 살아야 할까부다. 그래 우리 달 넘어갈 때까지 취해보자.”



오 남매를 바라보는 여사의 눈에선 기쁨과 추억이 서린 눈물이 맺혔다.

십여 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어찌 잊을 것인가.

봄볕 따스하던 오월. 등산을 간다고 나갔던 아들이 앰뷸런스에 실려 왔다.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 깨어나질 못했다. 가망 없다고 했다. 그때 나이 서른둘. 한창나이였다.

몇 날 며칠을 생각했지만, 아들을 살리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건장한 청년이었다. 장기도 건강했다.

다행히 장기를 기증받은 다섯 명 모두 착했다. 저희끼리 마음 모으기를, 서로 의형제를 맺어 여사님을 어머니로 모시기로 했다며 이름까지도 ‘은’자 돌림으로 개명했다.

남실바람이 춤을 추자 푸른 달빛이 온 누리에 퍼져나갔다.

밤이 깊어갈수록 그들의 정담도 깊어갔다. *





문상오 소설가<사진> 약력

-충북 단양 출생

-충청일보 신춘문예(단편), 새농민 창간기념공모(단편) 당선

-48회 한국소설문학상

-작품집 : <소무지>, <몰이꾼>(상,하), <길을 찾아서>, <야등(野燈)>, <도화원별기>, <새끼>, <묘산문답>, <아, 시루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