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알록달록 수세미
김향용 수필가
[동양일보]충주역 광장이 왁자지껄하다. 오늘은 스물여섯 명 여고 동창들과 함께 제천 시티투어 가는 날이다. 오랜만에 친구들하고 하루를 보낸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신바람이 났다. 충주를 제외한 서울, 일산, 청주에서 오는 친구들은 제천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총무 K는 지퍼 비닐 팩에 친구들에게 나눠 줄 간식을 준비하면서 이번에도 특별한 선물을 준비한 모양이다. 알록달록 별, 꽃잎 모양을 까실까실한 실로 짠 수세미를 넣었다.
오늘 함께하는 친구들은 여고 동창생들로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한 세월이 반세기가 되어간다. 철없고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는 사이로 사는 동안 이제는 동기간 같은 정이 들었다.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는 친구들의 응원 메시지가 담긴 손 편지와 금메달을 간직하고 있다. M 대학을 졸업할 때 만학도의 꿈을 꼭 이루라는 친구들의 마음을 담은 선물이다.
건강이 갑자기 나빠져서 일찍 우리 곁을 떠난 P는 이런 행사가 있을 때면 더 보고 싶은 친구다. “얘들아 ~~나왔어~”하며 달려올 것만 같은 서글서글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K가 직접 손으로 만든 수세미를 친구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가 끝난 후부터다. 친구의 솜씨를 자랑하느라 사무실 직원에게도 나눠 주었다. 색상과 모양이 예뻐서 사용하기 아깝다는 말을 들을 때는 내가 짠 건 아니지만 기분은 흐뭇했다. 친구의 솜씨는 나날이 발전해 친구들은 수세미 작품 대회 내놓으면 단연코 대상감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K는 집에서 가까운 요양시설에서 어르신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있다. 야간 근무하는 날 어르신들이 주무실 때 무료함을 달래고 졸음을 쫓기 위해 틈틈이 짠다고 한다. 한 코 한 코 뜰 때마다 친구들 얼굴이 떠오른다며 “작지만 받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보면 자꾸 만들어 주고 싶어져”라는 K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도 예쁘고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과 나눌 줄 아는 친구가 달리 보였다.
기차는 제천역에 도착했다. 시티투어 버스에 오르자 또 한 번 친구들과 반가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여고 시절 수학여행 가는 분위기였다. 버스는 청풍호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S가 오쿠에 삶은 계란을 소금까지 준비해서 뒷좌석부터 나눠주고 있었다. K와 S에게 친구들은 감사와 고마움으로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친구들의 마음 씀씀이를 보며 나눔을 생각해 보았다. 나눔은 마음이든 물질이든 내어주는 것이다. 내 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나눠 주기는 쉽지는 않다.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상대가 부담스러워한다고 생각해서 하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남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아낌없이 나눌 줄 아는 것도 진심이란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밝아지고 외로움에 떠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다. 요즘 세상은 이해관계가 분명해서 되도록 남에게서 받는 일도 주는 일도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그것은 기계 같은 시대의 산물일 수도 있다. 아무리 세상이 야박하다 해도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작은 나눔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접착제가 되기를 소망한다. 내 친구가 준 수세미를 볼 때마다 “친구야, 사랑해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청풍호반 케이블카 앞에서 우리는 알록달록 수세미를 양손에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래도록 남을 추억 사진이다. 육십 중반 넘은 우리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의 색깔로 입혀진 삶이지만 그 속에 고이 간직한 것은 변하지 않는 우정이다.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은 친구들의 진실한 나눔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