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이제 그만하고 국민에게 돌아오라
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동양일보]문재인 정부 후반부터 시작하여 2022년 3월 20대 대선, 2022년 6월 제8회 지방선거, 올 4월의 22대 총선을 차례로 치르면서 참된 정치는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국민은 몹시 나쁜 정치의 볼모가 되어 있다. 정치권의 극한 대립 상태가 과거에도 숱하게 있었지만 그래도 국민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치권은 정치 본연의 임무를 내팽개친 채 싸움질에만 골몰하고 있다. 대통령, 집권 여당, 거대 야당, 군소 야당 할 것 없이 오래전에 집을 떠나 이 골목 저 골목 몰려다니며 패싸움에 날 새는 줄을 모른다.
이제 아무 의미 없는 싸움질을 멈추고 정치권이 해야 할 일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치열하게 경쟁하되 싸우지 말고 최고는 아닐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 그것이 민심이고 그 민심이 바로 순리다. 국민은 민심을 거스르고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더는 보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자리, 국회의원의 자리, 그 자리는 국민이 잠시 위임한 자리일 뿐 정치인의 꽃놀이패가 아니다. 국민의 힘으로 이승만 독재정권과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마저 무너뜨린 그 준엄한 역사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위대한 국민의 뜻을 거역하지 마라. 마냥 두고만 보고 있진 않을 것이다. 이제 그만하고 국민에게 돌아와야 한다.
지금 이 나라의 정치적 혼란은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이 세 사람에게서 비롯되고 있다.
대통령은 불통을 집어던지고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 많은 사람과 소통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잘못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을 감추려다 보면 또 다른 잘못으로 이어지게 된다. 무능한 것보다 더 나쁜 것이 감추고 속이는 것이다. 정치에서 솔직한 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잘못은 집권 초기 젊은 당 대표를 끌어안지 못한 옹졸함에서 시작되었다. 젊은 당 대표 하나 끌어안을 수 없는 가슴으로 어찌 5천만 국민을 살피겠는가? 대통령의 권력은 무소불위의 것이 아니다. 선진국을 돌아보시라. 어느 선진국의 최고통치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가? 일부 후진국의 통치자들만이 아직도 그런 권력에 취해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의 불통은 다분히 오만과 독선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 오만과 독선을 버리지 않으면 남은 임기가 자유롭지 못하고 나라와 국민은 질곡에서 허덕이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자리는 나라와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가족을 지키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가족이 최우선이라면 자연인의 신분으로 하면 된다. 제도와 시스템에 의해 대통령 배우자의 일거수일투족이 관리되지 않으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탈이 나게 마련이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숨김없이 밝혀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며, 앞으로는 대통령 배우자의 자의적이며 돌출적인 움직임을 확실하게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대통령과 대통령 배우자가 시정잡배에게 휘둘리는 낯뜨거운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제1 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우리나라 정치를 혼탁하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순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당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정치적으로 어찌해보려다 보니 거대 야당은 그러잖아도 부족한 정책역량을 온통 당대표 방탄에만 쏟아붓고 있다. 이제는 국민의 귀에 가장 익숙한 단어가 특검이요 탄핵이 되어버렸다. 우리 현대 정치사에서 이런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야당 대표도 처음이려니와 300석 중 192석이 야당의석인 절대적 여소야대 현상도 그 예를 찾기 힘들다. 그러니 다수의 힘으로 법까지 바꿔가며 당 대표를 사법리스크로부터 보호하려는 터무니 없는 일을 버젓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이제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개인의 자격으로 사법부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전통의 민주당이 살아나고 이 나라의 정치가 제자리를 찾는다. 진정 민주당을 사랑하는 당 대표라면 선당후사의 굳은 결기를 보여줘야 할 것 아닌가?
정치인이라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나와 내 주변을 뒤로 물릴 수 있어야 한다. 누구든 국민을 이기려 하지 말고 국민을 속이려 들지 마라. 오로지 섬김의 자세로 국민만 바라보라.
국민의 명령이다. 이제 제발 그만하고 국민 곁으로 돌아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