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오, 노벨문학상 수상!

전병호 <시인>

2024-10-13     동양일보

[동양일보]SNS에, 카톡에, 인터넷 카페에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글귀가 뜬다. 뭔 말? 정말? 컴퓨터를 켜고 기사를 검색한다. 의심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 ‘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뿐이겠는가. 차 안에서, 길을 걷다가, 도서관에서, 직장에서 전 국민이 동시에 놀라 소리 질렀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소식을 접하지 못한 가족과 친구들에게 부지런히 퍼날랐을 것이다. 그것은 변방에 머물렀던 k-문학이 세계 문학의 중심부에 진출하는 순간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원어로 읽는 것이 가능하게 된 영광의 순간이었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된다고 해도 우리나라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왜 노벨과학상을 못 타나?’ 하는 기사를 읽은 뒤였기 때문에 노벨문학상 수상은 생각하지 못했다. 올해는 비유럽권 여성이 유력하다고 했지만 일본과 중국 작가만 거론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째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분들도 계시지만 별 기대가 안 되어 관심 두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말일 것이다.

아직 상을 타기에 이른 나이라는 이유로 후보군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 마디로 파격이었다. 유럽권, 남성, 나이 벽을 한꺼번에 깬 것이라고 하니 더 감격스럽다. 스웨덴 한림원이 과거보다 미래를 바라본 의도적인 수상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상처로 얼룩져있다. 그중에서도 4‧3과 5‧18이 남긴 상처는 크고 깊다. 그것은 세월이 가도 덧나기만 할 뿐 절대로 아물지 않는 상처였다. 한강 작가가 말하기를 다른 소설도 그렇지만 특히 「소년이 온다」를 쓸 때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고통’이었다면서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울었다고 한다. 역사의 무고한 피해자이면서 구원받지 못한 억울한 죽음에 주목하면서 그의 고통과 상처를 기억하고 치유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자못 감동스러웠다. 그가 문학을 시로 시작했다는 점도 눈에 뜨인다. 덕분에 여성의 섬세함이 함께 녹아 들어가서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을 획득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큰 영감을 받은 작가를 말해달라는 질문에 모든 선배 작가들의 노력과 힘이 영감이 되었다는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가 나자 ”원서로 읽자“면서 한강 작가의 책이 불과 하루 만에 30만 부가 팔려나갔다고 한다. 서점 매대에 책을 올려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간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부 서점에서는 오픈런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침울했던 출판계에 모처럼 신명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출판계뿐이겠는가. 사회 각 분야에 파급 효과가 엄청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생각할수록 긍지가 느껴진다.

필자는 문학의 궁극적 목적은 상처의 치유이며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상처를 후벼파서 분열을 획책하기는 쉽지만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 용서하고 함께 미래로 나가는 문을 여는 일은 어렵고 힘들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어쩌면 그렇게 왜곡된 생각을 잘 끄집어내어 판을 깨고자 하는지 참 신기한 사람도 많다.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민족적, 국가적 경사 앞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생각할수록 좋은 기회이지 않는가. 화해할 것은 화해하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치유와 회복으로 나가는 시작점이 아닐까?

나 역시 제대로 쓴 작품 한 편 없이 나이만 먹지만 그래도 끝까지 진실된 마음으로 문학인으로서의 길을 가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맞이하는 자세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