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김낙형 충북도립극단 초대 예술감독
“연극작품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예술’로 인식될 수 있게” 오랜 숙원 도립극단의 역할 임기 내에 기틀 마련해야 인재양성·관객개발·지역예술계와의 연계 중점 추구
[동양일보 박현진 기자]베이스 톤의 낮은 목소리에 아무리 화가 나도 큰소리를 낼 것 같지 않은 차분한 이미지, 게다가 잘 웃지도 않는다.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꼭 어디서 본 것 같은 사람,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외모에 ‘들썩거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남자.
‘쟁이’가 맞나 싶다.
징검다리 연휴가 이어지던 10월 첫 주말 오전 11시. 연휴 탓인지 한산해진 옛 청주시청사 맞은 편의 식당가 골목 2층, 외관상으론 허름한 충북도립극단 사무실(연습실)을 찾았다.
장소마저 주인을 닮았다. 있어서는 안될 것 같은 곳에 있는 것 같은 어색함.
분명 약속시간임에도 연습실은 어두컴컴했다. 그래도 약속을 잊을 성격은 절대 아닌데.. 정적을 깨는 건 손신형 충북도립극단 운영실장의 밝고 유쾌한 하이톤의 인사였다. 그녀가 안내하는 사무실 어둠 저편에 움직이는 듯한 사람의 모습, 그가 바로 김낙형(54) 충북도립극단 신임 예술감독이다.
평소에도 불은 잘 켜지 않는다는 그는 어두운 게 좋다는 간단한 설명으로 방문객을 맞았다.
임용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웃을 줄 모르는 그 얼굴에 첫인상으로 강렬했던 ‘눈빛’은 그대로다. 무대에 대한 지극한 갈증, 먹이를 쫓는 맹수처럼 놓치지 않는 정점, 사나흘 뜬눈으로라도 끝내 풀어낼 집념... 그의 눈빛엔 ‘그런 게’ 있다.
“내가 하는 연극은 뮤지컬처럼 스타가 있어 팬덤을 형성하지도 못하고 기획력이 좋아 50만, 100만 관객을 동원하지도 못하지만, 늘 공연장을 찾는 몇 안되는 마니아 관객 수를 늘리면서 '연극은 참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예술'이란 걸 느끼게 하고 그들을 지켜나가는 데 목적이 있다”고 강조하는 김 감독.
조근조근, 나름의 주관을 피력해 나가는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을 선택하고 선보이는 보편적인 현실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시대 전체가,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데 예술은 그 안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어떤 방향성을 잡아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지론은 20대 초반 일반극단이 아닌 실험극 중심의 극단 76단(서울) 입단과도 맥을 같이 한다. 연기 기본은 물론, 혜화동 밤거리도 헤매보고 포스터도 붙이고 극단 청소도 해가며 주로 조연출과 무대감독으로 각색, 연출 등 전문 스태프로서의 초석을 다졌다. 이어 30대 초반의 나이에 극단 ‘죽죽’(竹竹)을 창단하고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3기동인을 결성했다.
과거의 동인 시스템이 하나의 극단을 만들고 활동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의 극장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극단의 연출가들이 연대하는 동인형식의 혜화동 1번지는 대한민국 연극계에 변곡점 내지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도전 열기를 파급시킨 현장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도가 공존하는 실험’의 결과들은 화려했다. 김 감독은 2005년 극작, 연출한 ‘지상의 모든 밤들’로 PAF지 극작가상, 올해의예술상, 한국연극베스트7 선정은 물론 ‘맥베드’(극작, 연출)로 2008년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 한국연극 베스트 7 선정, 2010년 카이로국제연극제 대상, 두산연강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2019년 동아연극상 연출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경기, 강원도립극단 객원연출을 거쳐 순천시립극단 예술감독을 역임하고 현재에 이르렀다.
작품이 늘 우선이었던 김 감독은 2016년 뒤늦게 대진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2020년 청주대 대학원에서 연극학 석사를 취득했다.
하지만 그는 대학 ‘졸업딱지’를 떼기도 전, 2009년 공연예술아카데미 연출과 강의, 2010~2011년 한예종의 극작과 강의에 당당히 나섰다.
옹골지게 실험적 창작에 몰두해온 그는 이제 오랜 숙원 끝에 창단한 충북도립극단의 예술감독으로서 도민에게 다가가는 징검다리를 놓고자 한다.
"연극언어, 무대언어가 가지고 있는 파급력은 춤이나 노래보다 강한 흡입력을 갖고 있다"며 "관립극단의 장점을 살려 현실세계의 철학 뿐만 아니라 요즘 트렌드인 AI 가상세계, 상상세계를 무대에 형상화 시킬 수 있는 고전 선택으로 충북도민에게 인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그 작품이 바로 오는 18~19일 청주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선보일 충북도립극단 창단공연 '한여름밤의 템페스트'다.
김 감독은 “대학원 시절 일주일에 한번 수업 때문에 청주를 찾은 연고밖에는 없지만 현재 충북의 연극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도립이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배려해주고 외지의 새로운 얼굴을 반기며 기술력 확충, 지역인재 양성, 연계를 통한 관객 개발 등 많은 일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며 감사를 전하고 “임기 2년의 짧은 기간동안 무언가를 이룩해 놓기보단 새로운 결과를 위한 초석은 마련해 놓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피력했다.
배우의 시선 하나, 대사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눈빛'이 오늘도 연습실을 꿰뚫는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