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색과 무늬를 엿볼 수 있는 시편들”
김은상 시인, 시집 『그대라는 오해를 사랑하였다』 출간
꽃이 마음인 줄 알았는데
꽃 진 자리,
그 아득함이 마음이었다
외롭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그 말이
저기 저곳에서
꽃이 지고 있다는 뜻인 줄 알지 못했다
내 안의 내가 흘러넘쳐
어쩔 줄 몰라하던
이명,
겨울이 오고서야 알았다
외로운 사람과
그리운 사람의 입술이
서로의 손에 호, 호,
입김을 채워줄 수 있는 다정이
성에꽃 찬란함이라는 것을
꽃의 내륙에
바람의 내륙을 담고서야 알았다
외롭다는 말과
그립다는 말의 때늦음이
겨우
계절이라는 것을
사랑 그 후,
서성이며 일렁이며 불어오는
매미의 빈 날개를
촛불 속에 적시며 알게 되었다
마음, 마음,
온 생을 다해
울어대는
꽃 진 자리,
그 아름다운 여울을
시 ⌜꽃 진 자리⌟ 출간
김은상 시인의 시집 『그대라는 오해를 사랑하였다』가 도서출판 상상인에서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1부 꽃잎 속에 잠든 무당벌레는 또 어느 꿈속을 날아가야 하는가, 2부 어느 숲속의 나무 아래 거위의 눈처럼 잠들어, 3부 눈을 감고 떠난 짐승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4부 나의 시가 노래가 될 수 있다면으로 구성됐다.
정재훈 문학평론가는 “김은상 시인의 시에서 느껴지는 의미가 남다른 것은 마치 “아라베스크”(서시)라는 기이한 무늬를 보는 것처럼 시들이 품고 있는 의미의 층위가 상당히 놀랍도록 두텁다. 어떠한 각도로 보더라도 특유의 색과 무늬를 엿볼 수가 있게 되는데 어떤 때는 시에서 “가장 희미하게 손금을 밝히는 색”을 발견하기도 하고, 문득 “바람에 올라탄 왼손의 온기”가 느껴지기도 한다”며 “시인에게 죽음은 그저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생 너머의 또 다른 생을 꿈꾸는 존재적 사건이다. 그리고 죽음은 다름 아닌 시적인 상상으로만 열리는 무한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김 시인은 "등단 이후 가장 큰 고민은 내가 왜 시를 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있었다. 그러니까 약 15년 정도 동일한 질문 속에서 시를 썼고, 그만 쓰려고 하기도 했다. 작년부터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며 알 게 된 사실은 시를 쓰는 일이 인간에게 있어 무엇보다 가치 있은 일이라는 점이다. 시는 나와 세계의 무의식을 향한 이해이다. 두 번째 시집은 그 이해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고 출간 소감을 전했다.
김은상 시인은 200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유다복음(한국문연, 2017), 그대라는 오해를 사랑하였다(상상인, 2024). 소설 빨강 모자를 쓴 아이들(멘토프레스, 2019), 나의 아름다운 고양이 델마(멘토프레스, 2019)가 있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