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의금부 도사들의 신고식
이양수 국립청주박물관 관장
[동양일보] 예나 지금이나 신참과 선임들 간의 동료 의식과 위계 질서는 조직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각 조직에는 자신들만의 의식이나 모임을 가지기도 하는데, 그중 조선시대의 면신례免新禮는 대표적인 의식의 사례이다. 면신례란 조선 관료 사회에서의 독특한 통과 의례로서 일종의 신고식이다. 면신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신입을 면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첩의 명칭 중 금오金吾는 왕의 명을 받아 범죄를 조사하고, 범법자들을 엄단하는 의금부의 별칭이다. 의금부는 고려 충렬왕 때 설치된 순마소巡馬所가 그 시초로, 처음에는 범죄 수사와 재판 기능뿐 아니라 반란의 진압도 담당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범죄 수사와 재판 기능만 전담하여, 지금의 경찰청, 국가 정보원 그리고 법원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의금부를 금오, 금부 혹은 왕부王府, 조옥詔獄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것은 처음 들어도 금부는 친근할 것이다. 사극에서 대역죄인에게 사약을 가지고 가 전달하거나, 쫒겨난 왕을 귀양지까지 호송하는 이가 바로 금부 도사라고도 하는 의금부 도사이다. 의금부는 현재의 서울 종각 부근으로 SC제일은행이 자리 잡은 곳에 위치하였는데, 담당하는 업무가 업무이니만큼 조직의 기강은 조선의 어느 기관보다 엄격했을 것이다.
‘계첩’이란 모임의 내용을 담은 책을 지칭하니, 금오계첩은 의금부 도사들의 모임 내용을 담은 책이라고 보면 된다. 금오계첩은 의금부 도사들의 면신례 때 만들어지는 것으로 이 의식은 의금부에 발령을 받아 어느 정도 일이 능숙해지면 치루는 것이다. 새로 발령 받은 의금부 도사들은 면신례를 거쳐 진정한 의금부 도사로서 선임들에게 인정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의금부 도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준 선임들에게 인사를 하는 자리가 면신례이고, 이때를 기념하기 위해 의금부에서는 대대로 금오계첩을 만들었다.
금오계첩에는 모임의 장면을 담은 의금부 청사 그림과 계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의 명단인 금오좌목金吾座目 등이 실려 있다. 그림은 의금부 청사의 모습을 간략하고 평면적으로 담았는데, 중앙에 3중의 문이 있고, 가장 위에 죄인을 심문하는 호두각虎頭閣이 그려져 있다. 호두각 좌우에는 당상관이라 불리는 상급관료가 근무하는 당상청사堂上廳舍와 낭관이라 불리는 하급관료가 근무하는 낭관청사郎官廳舍가 그려 있다. 당상청사에는 갓과 붉은색 두루마리를 입은 10명의 참가자들이 앉아 있고, 당상청사 바로 앞에는 참가자들을 모시는 붉은 옷을 입은 관리 두 명, 마당에는 나장羅將 두 명이 서 있다. 마당의 양쪽에는 수양버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정문에는 문지기가 서 있다.
계회 참석자의 명단인 금오좌목에는 참석한 의금부 도사들의 이름과 기묘년 4월이라는 날짜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숙종 25년으로 1699년을 뜻한다. 즉 이 계첩은 17세기 후엽에 제작된 것으로 당시 의금부 도사였던 이제열의 것이었다. 그는 조선 2대 정종 7남 수도군의 후손으로, 전주이씨全州李氏 수도군파守道君派 풍산부정공豐山部正公 제열(정보)공계齊說(廷輔)公系 종회宗會 후손들이 이원기회계첩梨園耆會契帖과 함께 국립청주박물관에 기증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 문화유산은 내년 의금부 인근, 광화문 앞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청주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가기록원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특별전시에 소개될 예정으로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