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브라보! 브라보! 앙코르!
하재영 시인
[동양일보] ‘음악인 이상덕 선생 탄생 100주년 추모음악회’
공연 시각보다 일찍 청주예술의 전당으로 갔을 때 우려와 달리 공연장 로비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눈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은 관중은 공연장 2층까지 꽉찼다. 뜨거운 열기였다. 시작 멘트와 함께 무대에는 청주시립교향악단이 자리잡았다. 묵념에 이어 첼리스트 박혜나(이상덕 선생님의 외손녀)의 자크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을 배경으로 추모 영상이 펼쳐졌다. 여러 장의 사진이 오래전 세상을 내 앞으로 끌고왔다. 아련한 풍경이었다. 유영선 사회자의 깔끔한 멘트에 이어 등장한 테너 채완병 성악가가 부른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은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채완병 성악가는 이상덕 선생님의 제자로 올해 85세라고 했다. 스승님께 헌정한 그의 노래 끝에 이어진 감동이 여운을 남기며 가슴을 떨리게 했다. 감동이란 것이 이런 것 아닐까란 생각을 하는 사이 가족 소개가 이어졌다. 한분한분 소개될 때마다 ‘음악의 명문가’란 것을 알게 되었다.
메인 공연으로 최나경 플루티스트가 등장했을 때였다. 외모에서 풍기는 카리스마가 무대를 압도했다. 김경희 지휘자의 지휘 아래 청주시립교향악단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을 협연했다. 관중석은 심해처럼 조용했고, 모든 청중의 눈과 귀는 무대로 향했다. 나 역시 그랬다. 최나경 연주자 역시 이상덕 선생님의 외손녀로 세계적 플루티스트다. 24분가량 진행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연주가 도도한 강물 흐름처럼 흘렀다. 플루트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의 손놀림과 몸의 율동에서 퍼지는 선율은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연주가 끝나자 이쪽저쪽에서 “브라보!”, “앵콜!”이 쏟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시 등장한 최나경 연주자는 외할아버지를 통해 음악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고 회상했고, 독주로 쇼팽의 ‘녹턴’을 청중에게 선물했다. 격조 높은 연주를 듣는 자리였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공연장을 꽉 채우는 박수소리에 “앵콜”은 이어졌고, 연주자는 세 번째로 무대에 등장하여 일반인이 쉽게 보고 들을 수 없는 최상의 연주로 ‘세상에서 가장 짧은 곡’이라며 플루트로 청중을 끌어당기며 제압했다. 음악을 들으며 난 화두로 끌어안고 있는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시간을 색칠하는 다양한 무늬에 세련된 음률을 다룰 줄 아는 음악가의 연주를 듣는 것도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고 아름다움이라고….
이어서 드보르작의 ‘신세계’를 청주시립교향악단이 연주했다. 이 곡은 1979년 5월 28일 청주시립교향악단 창단연주에서 이상덕 선생님의 지휘로 공연된 곡이다. 음악을 감상하면서 나는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들을 보자 내가 무대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지휘자는 이상덕 선생님이었다. 그러니까 1977년 늦은 가을이었다. 청주교육대학 강당에서는 이상덕 선생님의 지휘 아래 음악을 선택한 합주반원들의 공연이 있었다. 청중은 시내 음악 선생님과 재학생, 학부모, 교수님이었다. 청중을 향해 인사를 한 이상덕 선생님은 무대에 앉아 있는 우리를 보며 지휘봉을 잡았다. 그 때 난 긴장된 몸으로 비올라를 손에 잡고 있었다. 코시코스의 ‘우편마차’,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그리고 또 한 곡, 대관식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서툰 연주였음에도 연주를 마치자 선생님은 우리를 향해 박수를 보내며 격려했다.
두 시간 남짓 걸린 추모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밤길이었다. 눈보라 거센 궂은 날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상에 없지만 아직도 그들의 발길이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기 때문이란 것을 발견했다.
신앙 선조들을 기억했고, 한 음악가의 삶을 음악으로 톺아본 하루가 마냥 나를 기쁨이로 충만하게 했다. 힘들고 고되지만 멋진 삶을 살다간 신앙인들의 모습과 청주지역 음악의 텃밭을 일군 이상덕 선생님의 모습이 오버랩될 때 이런 자리를 마련한 동양일보사, 청주시의 후원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브라보! 브라보! 앙코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