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명심보감(明心寶鑑)

정명희 화가

2024-12-16     동양일보
정명희 화가

[동양일보]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건 사람으로 사는 보람을 통해 보다나은 세상을 이루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까닭에 염치를 알고, 도리를 알며, 인격을 수양해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때문에 과거엔 천자문(千字文)을 익히면 바로 명심보감을 읽게 했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명심보감만 읽었어도 다른 이에게 누를 끼치지는 않고 산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래 선가 학교에서 도덕과목이 입시에 밀려나면서부터 이 모든 것들의 접촉 코드가 소멸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최근 안대회(성균관대) 교수가 누구나 알 것 만 바로 알지 못하던 ‘명심보감’을 완정본(完整本)으로 내놓았다. 그간 우리에게 알려진 2백여 종이 넘는 번역본이 있었건만 7종을 제외하면 모두 조선시대의 광해군(재위1608~1623) 때 만들어진 축약본을 풀어낸 것이었다. 이 축약본이라는 게 저자가 자기 마음대로 보증과 해체를 일삼은 까닭이다.

원문을 제대로 번역한 학자들도 오기와 오역이 많았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말이 ‘태공왈(太公曰)’이란 구절인데 이를 ‘강태공이 말하기를’이라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강태공은 기원전 11세기 주나라의 여상(강태공)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태공이란 말은 당시대의 서당 훈장 같은 향촌의 선생을 가리키던 일반명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대 아동교육서인 ‘태공가교(太公可敎)’를 인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명심보감의 저자는 누구인가? 우리는 그간 고려 충렬왕 때 문신인 추적(秋擿)을 저자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추적저자설’은 이승만(1875~1965) 전 대통령이 월남방문에 서 선물 받은 명심보감을 ‘국역증보 명심보감(1959)’으로 보급될 때 잘못 표기됐음이 1970년대에 이미 밝혀졌었다.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명심보감 판본인 1454년 간행된 ‘청주본’이 국내에서 발견됐고, 서문을 쓴 저자가 원말명초(1393)의 범입본(范立本)으로 증명되었다.

그는 고루한 도덕책을 쓴 것이 아니라 ‘논어’ ‘법구경’ ‘노자’ 같은 유, 불, 도의 경전뿐만 아니라 당대의 잠언, 격언, 구전속담까지 인용하며 집필한 방대한 것임이 판명된 것이다. 명심보감은 삶을 살아가며 현실에서 활용될 수 있는 실용적인 교훈을 간추려 쉬운 문장으로 다듬어낸 책이다. 그냥 짜깁기 한 것이 아니라 동양사상의 정수와 경험적 사유를 올바르게 담아내었다. 한마디로 동양의 ‘철학적 에세이’이자 ‘자기개발서’인 것이다. 명심보감에는 ‘인생은 실전이고, 세상은 냉혹한 것’이라는 가치관이 깃들어 있다.

일테면 ‘남의 허물을 들었을 땐 부모의 이름을 들은 것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 전달하지 말라.’는 사회생활의 조언에서부터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 아는 게 없고,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게 없으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 하루는 한 일이 없게 된다.’ 는 식이다. 그는 미국의 유명한 저술가 데일 카네기(1888~1955)와 견줄 수 있다고 안교수는 말한다. 안교수가 그간의 오류를 바로잡은 명심보감 완정본을 내놓으며 자세한 해설을 붙이고 출전을 새로 찾은 건 학계의 업적이자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가치와 지표를 올바로 찾게 한 지침서로서의 가치가 높다 할 것이다.

정치초년생 대통령의 탄핵을 놓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정치인에게 진작 읽었더라면 좋았을 구절도 있나요?”란 인터뷰 기자의 질문에 ‘제 능력을 믿고 오만한 자 보다 더 외로운 사람은 없다.(孤莫孤於自恃).’라는 5장 104조의 구절을 보여줬다. 앞 구절은 ‘얻지 말아야 할 것을 얻은 것보다 더 짧게 가는 건 없다.(短莫短於苟得)’란 말이다. 삶에서 누구나 지켜야할 바른 길을 쉽게 터득하도록 배려한 지침서로 곁에 두고 읽어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