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山梨
이양수 국립청주박물관 관장
[동양일보]2025년 국립청주박물관에서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일본 야마나시현립박물관山梨縣立博物館과 공동으로 특별전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를 열 계획이다. 한국인들이 일본을 여행할 때, 대부분 도쿄, 오사카, 교토, 나라, 후쿠오카 등에 주로 가기 때문에 야마나시라는 지명이 생소할 수도 있다. 야마나시에서 뭐가 제일 유명한가 현민들에게 물어보면 역시 후지산이라 답한다. 후지산富士山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우리로 치면 백두산과 같은 곳이다. 높이가 해발 3,776m로 2,744m인 백두산에 비해 천 미터 정도 더 높다.
후지산이라는 이름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죽지 않는 불사(후시)의 산, 활활 타는 불(후지)의 산, 혹은 무지개(후시)의 산에 기인한다는 설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2013년 지정되었고, 지정 명칭은 “후지산, 성스러운 장소 그리고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다. 후지산을 주제로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으며, 대표적으로 일본 1000엔권 지폐의 뒷면는 야마나시현의 후지산 주변 5대 호수 중 하나인 모토스 호수에서 바라본 풍경이 그려져 있다.
후지산의 북쪽에는 야마나시, 남쪽에는 시즈오카현이 위치하고 있다. 양쪽에서 모두 후지산의 고향으로 자랑하는데, 국립청주박물관과의 전시를 계기로 한국에서는 후지산의 고향은 역시 야마나시라는 인식을 굳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야마나시현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가이甲斐의 호랑이’라 불리던 다케다 신겐武田信玄(1521-1573)이다. 가이는 야마나시 지역의 옛 이름이며, 다케다 신겐은 일본 전국시대 대표적인 무장武將-다이묘이다. 일본 센코구시대戰國時代의 인물을 들면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3인이 가장 유명한데, 그 다음이 다케다 신겐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전국시대의 가장 유명한 인물로 통일의 발판을 만든 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권력을 찬탈하여 교토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도쿄 중심의 에도시대를 연 사람이다.
다케다 신겐은 전투에서 손자병법에서 따온 ‘풍림화산風林火山’의 깃발을 들고 전장을 누빈 것으로 유명하다. 손자병법의 군쟁편에는 “군사를 움직일 때는 질풍風처럼 날쌔게, 나아가지 않을 때에는 숲林처럼 고요하게, 적을 치고 빼앗을 때는 불火이 번지듯 맹렬히, 적의 공격을 방어할때는 산山처럼 우직하여야 한다” 는 내용이 있다. 사실 그 뒤에 “숨을 때는 그림자陰처럼 숨고, 군사를 움직일 때는 벼락雷이 치듯이 신속해야 한다는 내용이 더 있어 ‘풍림화산음뢰陰雷’의 여섯 가지 요소이지만 다케다 신겐 때문에 풍림화산만 유명해졌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풍림화산이라는 4자성어는 현대에 창작된 것으로 보이며, 실제 다케다 신겐이 이러한 문구의 깃발을 들고 전장을 누볐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다.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을 통일하려고 할 때, 가장 두려운 존재가 다케다 신겐이었다. 그와의 전투에서도 항상 고전을 면치 못하였고, 그 때문에 오다 노부나가는 밤에 잠을 못잘 정도였다. 오죽하면 다케다 신겐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다 노부나가는 3일 밤낮으로 잠을 잤다 한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본인의 죽음을 앞두고 철저한 준비를 해두었던 것 같다. 그는 죽기 전, 사후 그의 죽음을 최소 3년 간은 알리지 말 것, 후계자인 다케다 카츠요리에게는 가급적 전투를 피할 것 등을 명했다. 하지만 카츠요리는 오다 노부나와의 전쟁에 임했고, 나가시노 전투의 패배 등을 거쳐 다케다 가문은 멸족한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지만, 다케다 신겐이 죽지 않았더라면, 그가 오다 노부나가를 무찌르고 전국을 통일했다면, 그랬다면 임진왜란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다케다 신겐의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후지산과 다케다 신겐과 관련된 야마나시현립박물관과 현립고고박물관 등지에서 소장한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내년에는 국립청주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본 많은 이들이 야마나시현으로 가 다케다 신겐을 생각하며 후지산에 오르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