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착하면 세상 살기 힘들다.’는 사회풍조
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요즘 착하면 세상을 살기 힘들다고, 세상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친척인 중소기업사장도 부하 직원 얘기를 하다가 착한 직원이 싫다고 했다. 일 못하는 직원이 주로 착하다고 했다. 착함과 능력은 범주가 다른데도 착함은 무능이라는 오류를 믿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필자도 43년 동안 교직에 몸담았을 때도 학생들에게 늘 착한어린이가 되라고 강조하였건만 허탈하기 그지없다. ‘착하다’는 18세기 중엽 ‘주해 천자문’에서 선(善)의 풀이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말다툼의 옳고 그름을 판정해 주는 옳다, 훌륭하다. 등이었다. 국어사전에 ‘착하다’의 뜻에 바르다가 들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건전한 시민의 덕성이 무능과 동일시되는 시대이다. 특히 정치인들의 선거에서는 욕설과 막말과 범법이 능력이다. 대학생 딸에게 11억 대출받게 해 강남 아파트 사는 게 능력이다. 잘못 인정한다면서도 ‘너나 깨끗해라.’조롱하는 게 능력이다. 범죄 혐의에도 정치에 나서 국민을 위한다는 개소리를 외치는 게 능력이다. 자식 위한 일에 그깟 사소한 범법이 무슨 잘못이냐 여기는 게 능력이다. 공직도 마찬가지다. 선관위 경력직에 자식 꽂아 넣는 게 능력이다. 위조문서 만들 여건이 되지 못한 이들, 할 수 있어도 차마 하지 못한 이들이야말로 무능한 것이다. 물론 정치인·공직자의 도덕은 때로 다를 수 있다. 2300년 전 맹자는 ‘형수의 비유’로 이 차이를 간명하게 설명했다. 형수가 물에 빠지면 손을 잡아서만 아니라 머리채를 당겨서라도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위급한 상황을 구제해야 할 때 사소한 도덕에 얽매여선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이 평소 형수한테 함부로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착각하는 이가 적지 않다.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 자신들의 도덕은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450년 전 ‘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曺植·1501~1572)이 일갈한 말이 있다. “요즘 배웠다는 사람들은 손으로는 물 뿌리고 비질하는 법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하늘의 이치를 말하며 정의를 도둑질하고 남을 속인다.”라고 했다. 왜 비질하기 전 물을 뿌리는가. 먼지를 최소화해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는 착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유교 경전인 대학(大學)을 배우기에 앞서 아이들 배우는 소학(小學)에 나오는 내용이다. 작은 배움도 모르면서 큰 배움을 안다고 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 희생과 존중 같은 가치가 조롱받는 사회는 건강하지도 않고 어느 수준 이상으로 발전할 수도 없다. 제 몫 다 하고, 돋보이지 않더라도 사회구성원 모두가 제자리에서 서로 존중하며 단단한 팀워크를 짤 때 건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욕설·막말·범법하는 이들이 지도자가 되는 사회는 잠깐 반짝할 수 있을 뿐이다. 건전한 시민의 덕성이 무능과 동일시되는 시대에 조롱당하지 않고 세상을 온전히 건너 갈 수 있을까? 눈물이 난다. 어쩌다가 착하면 손해 본다는 게 통념이 되었을까? 착하다는 말이 자기주장 없이 남의 마음에 드는 행동만 한다는 뜻으로 흔히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착함은 더 이상 추구할 덕목이 아닌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다들 능력을 내세우고 높은 봉우리에 오르려 애쓰는 세상에서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았기에 견지할 수 있었던 착함, 그것이 지닌 무한한 힘을 떠올린다. 착해서 세상을 살기 힘든 게 아니라 분별력과 능력, 그 외 다른 특성들 때문에 문제이지 착한 것 자체는 오히려 성공에 도움이 될 뿐이다. 선과 악은 도덕적 판단의 핵심 개념으로, 그 본질에 대한 논의는 철학, 종교, 사회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선과 악의 기준이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그러나 합법적인 악, 상식적인 악함이 선함을 조롱하는 사회풍조가 생겨나서야 말이 되는가? 선과 악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윤리적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선과 악의 개념은 개인적 윤리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의와 글로벌 책임과도 연결되며,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착한 건 바른 거라는 사실, 착해서 진정으로 강한 사람. 그리고 바로 그게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