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새벽 도서관에서

강병철 소설가

2025-01-14     동양일보
▲ 강병철 소설가

내 석사논문을 통과시킨 소도시 대학 도서관
젊은 날, 얼떨결에 몸을 의탁했다가 수십 년 넘게 이어지는 중이다. 28년 전쯤일까, 여덟 살 아들 손잡고 처음 방문했을 때.
‘이렇게 큰 학교가 있나요? 헐, 대박.’
기절할 듯 놀랐지만 기실 대학 캠퍼스치고는 작은 편이다. 그 캠퍼스 도서관에서 틈만 나면 보낸 세월이 중장년과 초로까지의 연장이다. 90년대 초반, 그 백제의 도읍 중학교 연구부장 시절 교생 실습 나온 여대생들이.
“도서관에서 봤어요. 복학생인 줄 알았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화장실 거울 앞에서 ‘젊어보인단 말씀이지. 우히히’ 귀에 걸린 입술 모양을 확인하기도 했다.
아들과 딸이 크면서 그 학교 도서관 입장으로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초중등 시절 입장하려면 공익 요원이 가로막으면.
“국립대는 세금 운영입니다. 지역사회 주민에게도 소통 공간을 주어야 합니다.”
항변도 했지만, 솔직히 이 정도 개방을 허락하는 대학도 흔하지는 않다. 아무튼 아들과 딸들은 공익에게 쫓겨나면서도 굽힘 없이 출입하면서 사춘기를 통과했고 나중에는 대학생만큼 덩치가 커졌다가 순식간에 중년의 부부가 되었다.
그 여리던 새순들이 미루나무처럼 쭉쭉 커가는 만큼 나도 늙었으니 세월 탓이 가장 크다. 키가 3센티 줄었고 등이 굽었으니 얼핏 딱해 보일 수도 있는 포즈이다. 지하철을 타면 누가 자리를 양보할까 봐 젊은이만 보이면 저만치 피한다.
1963년, 그 여덟 살 때 배운 <빨간 마후라>라는 노래가 있었다. 공군 조종사가 창공을 헤치며 여자를 떠올리는 문장이다.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구름 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 그리고 마지막 두 줄이. ‘아가씨야 내 말을 잊지 말아라 번개처럼 흘러가는 청춘이란다’
그 마지막 가사.
아, 그때는 몰랐다. 어제 그제도 내일 모레도 1963년에서 변하지 않았으므로 ‘번개처럼 흘러가는 청춘’이 무슨 뜻인 줄 아예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60년 이상 번개처럼 흐르더니, 다시 도서관이다.
대학생 도서관은 카페처럼 우아하고 일반인 개방 공간은 조금 후지다. 게다가 인터넷이 자꾸 중단되어 ‘엣다, 모르겠다’하며 카페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어 번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직원께서.
“선생님, 나가시지요? 여기는 학생 전용 공간입니다.”
건드리는 바람에 불쑥 싸우기도 했다.
“그런데요?”
“학생들이 싫어합니다.”
“아니, 어른이 공부하는 모습을 싫어하면 나라의 미래가 없는 거지요.”
그 늙은 직원도 만만찮게 목청을 높였으므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다시 쫓겨나듯 일반인 도서관으로 리턴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술 깬 아침마다 새벽 도서관으로 직행하는데, 오늘은 나 혼자였다. 그때 웬 초로의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선생님, 지난번엔 정말 죄송했습니다.”
소리 지르던 몇 달 전 얼굴이 갑자기 정겹게 변신하면서 먼저 사과를 하는 것이다.
“아닙니다.”
그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나도 벌떡 차렷자세로.
“제가 규칙을 지키지 않았으니 결례를 범한 겁니다.”
그러자 다시 조아리며.
“아닙니다. 공부하시는데 방해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서로 굽신굽신 고개 숙이다 박치기까지 했으니 훈훈 풍경이다.
백제의 고도 그 소도시 캠퍼스.
초겨울에 세워진 눈사람 혼신으로 껴안아 녹이고 싶은 그 캠퍼스는 아내의 모교이기도 하다. 척박한 시국, 광화문 집회에 부부가 다녀온 아침, 차가운 아스팔트 바람을 떠올리는 대학 도서관의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