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임동현 비영리 민간복지단체 (사)징검다리 회장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이 보편적 문화로 자리잡기를”
"가졌거나 덜 가졌거나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

2025-02-16     박현진 기자

[동양일보 박현진 기자]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림은커녕 고교 진학도 포기해야 하는 극심한 가난 앞에서 중3 담임선생님의 끈질긴 설득으로 겨우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바로 입대했고 제대하자마자 ‘태어날 때부터 멍에처럼 짊어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 버는 일에 나섰다.

셋방에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만든 뼈다귀해장국과 김밥으로 야식배달을 시작해 매출을 올렸고,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닿은 연예인들의 매니저로 연 200회 정도의 큰 행사를 기획하며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마음이 바뀌어, ‘생뚱맞게도’ 29살의 나이에 문화복지 징검다리를 창립, 30년째 봉사에 전념하고 있는 임동현(60) (사)징검다리 회장의 옛날이야기다.

그는 “단순히 돈만 벌자고 마음먹었다면 연예기획사를 계속했을 것”이라며 “내가 어려울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외로웠던 것처럼, 내가 먼저 주변을 살펴보고 도움으로써 가치있는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단다.

 

1995년 창립,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징검다리(청주시 상당구 탑동 82번길 26. 2층)는 청년봉사단, HAPPY-1004 봉사단 등 7개 봉사클럽과 8개 시·군지회 봉사자 400여명을 중심으로, 사회복지마케팅을 통해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사회적 약자에게 후원자와 순수 봉사자를 연계, 서비스와 후원물품을 제공하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100여평 규모의 탑동 본부는 사무실과 교육실, ‘사랑의 빵 나누기 센터’ 등으로 조성됐다. 그중에서도 ‘빵’ 센터는 대형 제빵시설을 갖추고 삼성, 하이닉스 등 대기업의 사원연수교육장으로도 활용되며 그렇게 만들어진 빵은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진다.

징검다리를 통한 봉사 참여자는 연평균 5000여명에 달하고, 2006년부터 19년 동안 진행돼 온 ‘사랑의 연탄나누기 행사’로 배달된 연탄은 440여만 장에 이른다.

“징검다리는 봉사자로 운영되는 단체”라는 그는 늦깎이 공부에도 열중, 마흔다섯 살에 청주과학대에 진학해 교통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21년에는 11대 충북도의원 보궐선거에 도전, 2년간 민간 복지차원의 적절한 분배 등 사회복지예산의 실질적인 활용을 위한 역할을 담당,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부하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다.

문득 씁쓸한 미소를 짓는 임 회장. 30대 초반 후배 소개로 만나 1남 2녀를 둔 아내 김진이(51)씨에게는 “그저 천덕꾸러기 남편일 뿐”이라며 “버는 돈 남만 위해 쓰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고 너털웃음을 웃는다.

반면 아내와는 달리, “본인이 실제로 하는 일은 없으면서 돈만 벌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과 “자신의 ‘치적’에 대한 홍보용 들러리 취급도 많이 듣고 당한다”는 그는 그럼에도 복지사업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장맛비가 계속되던 어느 해 여름, 5000~6000만원이 소요되는 경비를 거리모금을 통해 지원했지만 끝내 숨을 거둔 태권소년과, 살을 에는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해 겨울, 바깥 추위보다 더 심한 냉기 속에서 오로지 서로의 체온에만 의지해 앉아 있던 할머니와 손녀 등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일찍 움직였다면 하는 안타까움과 후회는 그가 30년을 이어온 봉사의 촉매제였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의 채찍이 됐다.


임 회장은 살면서 ‘사람’이라는 단어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의 좌우명 또한 ‘나는 사람’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어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하되, 인간관계나 주변의 유혹에 흔들릴 때 ‘나는 사람’임을 기억하면, 악하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언행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론에서다.

그는 “우리의 K-팝이나 영화 등이 중심축이 돼 전 세계 젊은이들의 감성과 문화를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가졌거나 덜 가졌거나 상관없이 소외된 이웃을 돕는 복지도 보편적 문화로 자리잡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소망했다.

그와 같은 이들이 존재하는 한, 어둠 저쪽의 많은 사람이 그가 놓은 징검다리를 건너와 희망을 꿈꾸고 상처를 위로받을 날도 멀지 않았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