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서예원 청주교육대 체육교육과 교수
소매틱 원리를 이용한 아르헨티나 땅고로 지역주민들과 교감하다
제2의 고향 청주에서 10년 후 노인대학, 경로당 찾아 함께하고파
[동양일보 박현진 기자] 흔히들 ‘탱고’ 하면 신체를 밀착시킨 커플이 때로는 입에 붉은 장미를 물고 게걸음 스텝을 밟으며 헤드플릭(머리를 꺽듯이 젖히는 동작)을 하는 격렬한 댄스를 떠올리곤 한다.
인터넷 검색창에 ‘탱고’를 쳐봐도 ‘아르헨티나의 고유한 음악장르와 그 음악에 맞춰서 추는 춤으로 스페인어 발음으로는 ’땅고‘라 한다’고 나온다.
이런 연유로 대부분은 ‘탱고’를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외국의 민속춤 정도로 생각할 뿐, ‘탱고’와 ‘땅고’가 전혀 다른 춤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로 각종 백과사전의 ‘탱고’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 ‘댄스스포츠이자 사교댄스에서 발전한 콘티넨털 탱고와 아르헨티나 땅고는 구분돼야 하며, 땅고는 서로 안은 채 음악에 맞춰 ‘걷는’ 춤으로 리더와 팔로워 사이 오가는 에너지와 교감이 핵심적’이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 ‘땅고’는 걸을 수만 있다면 출 수 있는 춤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도 있지만 탱고나 살사가 주지 못하는 깊은 교감과 따듯한 안기, 정교한 걷기에서 오는 풍부한 매력 등으로 ‘춤의 끝판왕’이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이런 땅고에, 긴장된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 잠들어 있는 몸의 감각들을 일깨우는 소매틱(Somatics, 몸학-단순한 신체와 구분되는 지성, 감성 등이 스며있는 몸) 원리를 적용, 소마 힐링프로그램으로 5년째 지역주민들과 공동체문화를 형성해 가는 사람, 그는 바로 서예원(60) 청주교육대 체육교육과 교수다.
서 교수는 1965년 서울 출생으로,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27년째 청주교대 재직 중으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고등학교 전문교과 집필위원, 초등교과서 검정 심의위원, 한국무용예술학회 부회장과 편집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초등무용교수법>, <문화예술교육표준(무용) 개발>, <무용수업 전문성 기준 탐색>, <학교문화예술교육 교수-학습 지도안> 등 수권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소마 힐링프로그램 강좌 역시 그의 왕성한 활동의 연계선상에 있다.
땅고는 “2016년 연구년을 맞아 3개월간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 처음 만났다”고 했다. 우연히 들른 밀롱가(Milonga. 땅고 춤을 추는 곳)에서 원주민, 이방인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걷는 듯, 춤추는 듯 교감하는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단다. 정해진 파트너도 없이, 정해진 스텝도 없이 반도네온(탱고음악 악기)의 구슬프고 깊은 선율에 맞춰 즉흥적으로 주고받는 움직임이 마치 대화하듯 느껴졌단다. 그리곤 어느샌가 자신도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다고.
아침마다 소매틱 몸풀기로 하루를 여는 서 교수가 땅고와 소마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때마침 국립대학육성사업 공모에 소마 힐링프로그램이 선정됐고 모집공고를 듣고 찾아온 지역 주민 20여명과 일주일에 한 번 교내 체육관 무용실에서 강좌를 열고 1년에 한 번 공연 겸 발표회를 가진 지 5년째다.
수강생들은 만족해하고 호응도 뜨겁다.
“단순히 춤의 테크닉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걸음 하나, 동작 하나에 내 몸의 어디가 움직이고 어떻게 변화하며 얼마나 교감할 수 있는지를 자각하는 일이 이렇게 내 삶을 바꿔놓을 줄 몰랐다”는 주민 수강생들의 즐거운 소감은 서 교수의 보람 그 자체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지난달에도 방학을 이용해 전 세계 의사와 특수학교 교사들이 주로 참여하는 전문가 교육 연수 차 독일에 3주 동안 다녀왔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앳된 외모와 가녀린 체격 어디에서 그런 열정이 쏟아져 나오는 걸까.
약학대를 졸업하고 호주 유학길에 나선 외동딸을 떠나보내고 혼자 지내고 있는 서 교수는 2년 전, 서울로 오가던 ‘두 집 생활’을 청산하고 제2의 고향인 청주에 온전히 둥지를 틀었다.
“원론적이긴 하지만 많이 연구하고 준비해서 열심히 가르치는 게 좋은 교육자이고 좋은 연구자인 동시에 임무”라는 그는 “그 원론적인 걸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눈 돌릴 틈이 없다”면서도 “부산스럽지 않은 청주에서 더러 진솔한 얘기 나눌 수 있는 벗들도 많이 생겼다”며 행복한 미소를 보인다.
퇴임하고 10년 후쯤엔 “나를 필요로 하는 노인대학이나 경로당에서 소매틱 춤을 가르치고 싶다”는 그의 꿈이 그저 순수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진 이유는, 그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어렵고 힘든 때도 있었지만’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