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광장에서 해체 중인 자유 민주주의
김종대 전 국회의원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주류 이념은 자유 민주주의였다. 경제적 자유권을 바탕으로 정치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자유민주 기본 질서는 국가 운영의 기본 원리였다. 이 이념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중산층이 성장하였다. 주변 정세가 안정되어 전쟁이 억제되고, 저물가와 저금리 속에서 국가는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도성장은 심한 격차와 불평등을 초래하는 폐단을 드러냈다. 현재 한국에서 소득의 지니계수 0.333은 미국이나 영국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부의 지니계수는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30년 전에 상위 1%가 부의 20%를 보유했다면 지금은 50%를 장악했다. 이런 불평등에다 1%대 저성장이 예고되는 대침체기를 목전에 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의 왼편에서는 자유 민주주의의 ‘자유’가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주범이라는 비판 의식이 높아졌다. 민주주의까지 위협하는 불평등은 시장의 독재, 자본의 독재에서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민주주의 앞의 자유를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을 의미하는 ‘사회’로 대체하자는 주장이다. 이렇게 나온 사회 민주주의는 지난 20년 간 진보의 주요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대해 이번에는 사회의 오른편이 반발했다. 놀랍게도 민주주의를 희생시키더라도 자유만은 수호하겠다는 거친 선언을 한 당사자가 윤석열 대통령이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국정 이념을 자유를 표방한 그는 여성과 장애인, 외국인, 노동조합에 친화적인 야당을 자유를 침해하는 반국가세력이라고 낙인을 찍었다. 자유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를 떼어 버리고 사실상 자유 지상주의를 외친 대통령은 작년 12·3 비상계엄을 통해 자유 권위주의로 치달았다. 자유 권위주의는 1930년대의 시장과 개인에 국가 권력을 동원하여 개입하던 파시즘과 달리 시장과 자유경쟁을 옹호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동원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불평등은 묵인되거나 강화되고, 사회는 능력주의에 따른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이를 비판하는 야당이나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포기한 셈이다.
왼편과 오른편에서 각기 공격을 받는 자유 민주주의는 사실상 해체되고 있다. 주말의 광화문에서 좌우 양쪽으로부터 짓눌린 자유 민주주의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릴 지경이다. 이는 민주공화국을 유지해 온 정신적 토대가 붕괴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에 대해 정부나 법원은 자유민주 기본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신속한 문제 해결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이게 또 탈이 났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과 사법기관끼리 서로 압수수색을 하는 분열적 상황이 잇따르면서 국가가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은 자유 민주주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는 1933년 바이마르 공화국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극우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대립하는 그 당시의 독일에서 무능한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히틀러 총리는 공화국을 아예 끝장내 버렸다. 이런 광란에 법원이나 의회, 종교 지도자는 지극히 무능했다는 점을 기억하자.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의 제도와 권위는 완전하지 않다. 적어도 2024년 겨울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는 허점투성이며, 극단 세력의 출현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저성장과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든 제도와 규칙을 돌보고 고쳐서 공화(共和)와 민주(民主)의 반석을 견고하게 다져 나가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가 마무리되면 우리는 새로운 나라, 더 강한 민주주의를 설계하는 혁신의 광장에서 손을 맞잡아야 한다. 시대 상황에 부합하는 헌법을 완성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서 상생의 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런 노력을 게을리하면 극단 세력에게 나라를 통째로 가져다 바치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가슴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