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지방소멸 위기, 대학과 지역이 함께 여는 RISE 해법
백기영 유원대 교수
대한민국은 지금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이라는 복합 위기 속에 놓여 있다. 특히 충청북도 남부권, 즉 영동군·보은군·옥천군 등은 청년층의 지속적인 유출과 고령화 심화, 산업기반 약화가 맞물리며 지방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단순한 인구정책이나 재정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이 지역에 지금 필요한 것은 혁신적이며 통합적인 지역 대응 전략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대학과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대표 사업이 바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이다.
RISE는 단순한 대학지원사업을 넘어, 지자체가 주도하고 대학이 전략적으로 참여하여 교육, 산업, 고용, 정주, 복지를 통합적으로 연계하는 지역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특히 충북 남부권은 포도·와인 중심의 농업자원과 헬스케어 관련 교육기반, 고령화에 대응할 보건복지 역량 등 지역 특화 요소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RISE사업의 실증 모델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최적지다.
첫째, RISE의 성공을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방향은 대학과 지역 간의 긴밀한 협력체계 구축이다. 과거 대학은 인재를 수도권으로 이동시키는 관문이었지만, 오늘날 지역대학은 지역문제 해결의 거점으로 역할을 바꾸어야 한다. 유원대학교는 ‘와인사이언스’, ‘스마트농업’, ‘헬스케어’ 등 지역산업과 정체성을 반영한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있으며, 학사구조 역시 전공 간 융합과 실무 중심 인재 양성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지자체의 정책적 기획과 투자 없이는 지속되기 어렵다. 따라서 대학·지자체·산업체 간의 RISE 거버넌스 체계를 제도화하고, 지역현안 해결을 위한 실질적 공동 의사결정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지역특화산업의 전략적 육성이 필수적이다. 영동군은 이미 와인 산업의 기반을 갖춘 지역으로, 유원대학교는 와인사이언스 학과 운영, 와인플라자 조성, 글로벌 산업 연계 프로그램 등을 통해 양조, 유통, 관광이 융합된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여기에 스마트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와인 산업’으로의 고도화는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한층 높일 수 있다. 또한 스마트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정밀농업 역시 농가의 생산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열쇠다. ICT, AI, 빅데이터 기반의 실시간 생육 모니터링, 자동화된 수확 예측 및 양액 조절 시스템은 대학의 기술 개발과 농가의 실질적 수요를 연결하는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혁신은 청년 창업과 농산물 고부가가치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지역 경제 전반의 체질 개선을 유도할 수 있다.
셋째,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는 대학의 역할 강화가 요구된다. 충북 남부권은 고령화율이 전국에서도 높은 편이며, 이에 따른 의료·복지 수요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유원대학교는 간호학과, 물리치료학과, 사회복지학부를 중심으로 고령친화 인력을 양성하고 있으며, 농업과 돌봄을 결합한 ‘케어팜(Care-Farm)’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이는 고령자가 자연 속에서 농작업을 통해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연결을 유지하도록 돕는 새로운 복지 형태로, 교육과 복지, 지역 일자리를 통합하는 혁신적 시도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늘봄학교와 같은 지역 밀착형 교육복지 프로그램은 아동·청소년 교육, 부모의 돌봄 부담 완화, 고령층 일자리 제공 등 다양한 효과를 동시에 창출하고 있다. 대학은 이 모든 연결고리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지역공생형 거버넌스의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전략들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안목과 지역 맥락에 기반한 정책 지속성이 필요하다. 충북 남부권은 ‘와인’, ‘스마트팜’, ‘헬스케어’라는 고유한 지역 자원을 바탕으로 고령화 대응, 청년 정착, 산업 혁신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RISE사업은 이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플랫폼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유연한 지원, 지자체의 기획역량, 대학의 실행력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지방소멸은 불가피한 미래가 아니라, 준비된 지역이 주도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도전이다. 충북 남부권의 RISE사업이 그 선도적 사례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