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에 응축된 제3의 자아로 극한에 이르는 상상력 전개를 보여주다

이승예 시인, 시집 <코드를 잡는 잠> 출간

2025-04-26     도복희 기자

 

줄 하나 없는 잠을 잡니다

 

불면이 내립니다

줄 없이 연주되는 음계에

잠 속에서 가사를 써넣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올려 치는

빗줄기를 당겨 팽팽하게 튜닝합니다

잠은 G 코드로 옮겨 갑니다

 

코드를 옮겨 잡지 못해

현과 현이 서로 다른 음의 노래가 됩니다

내가 살아갈 미래입니다

한 가지의 코드로 나를 작곡한 한 남자는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내 코드로 옮겨 와 잠을 잡니다

 

비를 맞습니다

스스로 떨어지며 처음 서보는 팽팽한

현들입니다

나도 따라 뛰어내립니다

 

빗줄기와 기타 줄

두 가닥의 줄이 생겼습니다

어떤 코드로 옮겨갈까요

 

연주는

당신

내가

 

누가 할까요

- 코드를 잡는 잠전문

 

 

 

이승예 시인

 

이승예 시인의 시집 <코드를 잡는 잠>시인수첩 시인선 95번으로 출간됐다. 이 시집은 1무등산에는 등이 있다2본 적 없는 말3요일을 바꾼 사람4계단등 총 54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등단 이후 시인이 꾸준히 천착한 언어의 마지막 벽, 요컨대 극한에 이르는 상상력의 전개를 보여주는 이번 시집은 언어에서 비롯되는 언어 자체의 무수한 응축과 확장, 환원과 전개, 돌연한 등장과 사라짐 등을 오로지 시인이 이끌어낸 문장으로 답사(踏査)한다는 점에서 그 무게가 남다르다.

무엇보다 시인은 대상을 응시하되 단지 바라봄으로 그치지 않으며, 대상의 약한 고리와 미세한 균열을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대상은 그것이 지금까지 유지해 왔던 형체를 벗어버리게 된다. 대상을 더 이상 눈앞에 던져진 사물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에 응축된 제3의 자아로 확장하고 반증해 나아간다.

이 시인은 이번 시집의 주제를 굳이 정리해 본다면 억압된 분노와 생명의 존엄성, 그리고 어두운 사회적 상황 속에서 잊을 수 없지만 잊힌 것처럼 심연에 가둬 두었던 자아 꺼내기의 시학으로 시도했다모든 시편에서 지양하는 방향은 억압된 감정에서 해방되어 그 감정에 직면한 나의 세상을 적게나마 정지시켜 놓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시집은 기존의 이미지 중심의 서정에서 벗어나 현실적 경험과 밀도 있는 상상의 사유를 나란히 놓으려고 했다고 전했다.

이승예 시인은 2015발견으로 등단했다. <5회 김광협 문학상>, <20회 모던포엠 작품상>를 수상했으며 신인으로서는 드물게 치밀한 언어 운용을 통해 중량감 있는 문장과 이미지를 생산한다는 문단의 평을 받고 있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