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충청북도 사람들

한만수 시인·소설가

2025-05-01     동양일보
한만수 시인·소설가

충청북도는 바다가 없다. 충청북도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바다가 없는 지역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다가 있는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고기 잡는 것을 구경하며 놀고, 충청북도에 사는 아이들은 산에서 먹이를 구하는 것을 배우며 논다. 또,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으면 바다에서 생선을 잡아온다. 바다가 없는 충청북도에 사는 사람들은 논밭이나 산에서 먹을 것을 구한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들은 ‘잡아 온다’고 한다. 잡는다는 말에는 능동적인 힘이 깃들어 있다. 존재하는 것을 단숨에 움켜쥐는 행위이다. 그러나 ‘구한다’는 말은 손쉽지 않다. 땅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산은 좀처럼 먹을 것을 선뜻 내어주지 않는다. 구한다는 것은 기다리고, 애쓰고, 헛수고를 감내하며 언젠가 얻을지도 모를 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충청북도에 사는 사람들은 노를 설렁설렁 저어서 그물을 쳐서 먹을 것을 잡아 올 형편이 못 된다. 충청북도에 사는 사람들은 늘 땀과 시간을 바쳐야 한다. 황무지에서 바위를 캐내고 자갈을 골라내고, 산에서는 화전을 일구느라 노력하는 자세가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게 된다.

충청북도 사람들의 은근과 끈기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누워 잘 때까지 디디고, 걷고, 땀을 흘린 땅이 주신 것이다.

바다에 그물을 던져 잡아 오지 않고,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어 논밭을 일구거나, 먹을 것을 찾아 이산, 저산 헤매다 보니 은근과 끈기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결코 쉽게 꺾이지 않는 심성. 한 번 마음을 정하면 오래 품고, 남들이 포기할 때에도 묵묵히 걸어가는 성질. 그것은 바다가 없는 땅이 가르쳐 준 방식이다.

충청북도에서 태어나면 어렸을 때부터 벼는 배가 고프다고 해서 거름을 무한정 줘도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구하는 시간이 길수록, 얻어낸 한 줌의 소중함이 크다는 것을 알기에 한번 정을 주면 죽을 때까지 인연을 이어가는 것도 충청북도인의 심성이다.

충청북도의 겨울은 매섭다. 산등성이를 따라 바람이 몰아치고, 들판은 얼어붙는다. 그러나 그 땅은 봄이 오면 다시 살아난다. 마치 긴 숨을 참았다가 한꺼번에 내쉬듯, 봄날의 충청북도는 잿빛을 걷어내고 푸르게 타오른다. 그래서 타지 사람들은 충청북도 사는 사람들은 사귀면 사귈수록 진국이라는 말을 한다.

외지에 나가보면 종종 오해를 받는다. 말이 없고,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아 답답하고, 물탄 막걸리처럼 물맛이라 멍청도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심이 깊을수록 큰 고기가 산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속에는 끓는 물줄기 같은 저력이 있다는 것을 충청북도 사람들은 안다. 그래서 쉽게 흥분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한 번 정한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어느 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문득 해내고야 만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구하는 일이다. 구하는 일에 능숙한 충청북도 사람들은 구할 것을 얻기 위해 요란을 떨지 않는다. 항상 말이 없는 땅처럼 조용히 구한다. 사람의 미덕은 침묵에서 비롯된다. 미덕(美德) 아름다운 덕행이다. 그래서 충청북도 사람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