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임차인의 보증금반환채권 이중양도
박재성 변호사
임차인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타인에게 빌린 돈을 변제하지 못할 경우 보증금반환채권을 여러 명의 채권자에게 이중으로 양도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임대인이 자신의 아파트를 보증금 1억 5천만 원에 임대로 주어 올해 8월에 임대기간이 만료되는데, 지난 달에 A회사로부터 보증금반환채권 중 8,000만 원을 양도받았다는 내용증명우편이 배달되었고, 이번 달에는 B회사로부터 보증금반환채권 중 1억 원을 양도받았다는 내용증명우편이 배달되었다면 누구에게 얼마를 주면 되는지, 그리고 임차인에게 받을 수리비가 있다면 이를 어떻게 공제해야 할지 궁금할 수 있다.
우선 보증금반환채권은 임대차계약 종료 후 임차목적물을 임대인에게 반환할 때 발생하는 장래조건부 채권이지만 그 발생시기와 금액을 확정할 수 있는 기준이 있으므로 임대차 기간 중이라 하더라도 임차권과 분리하여 채권양도를 할 수 있다. 다만 민법에서는 채권양도 사실을 양도인이 채무자에게 통지하거나 채무자가 승낙하지 않으면 채무자 기타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이러한 통지나 승낙은 확정일자 있는 증서(예: 내용증명우편)에 의하지 아니하면 채무자 이외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사례에서도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반환채권을 양도받은 A회사와 B회사는 각각 내용증명우편으로 채권양도 사실을 통지하였기에 민법 규정에 부합하는 통지 절차를 갖추었다. 문제는 임대인이 누구에게 얼마를 주어야 하는지인데 양도된 채권금액의 합계액이 임대인이 받은 보증금 1억 5천만 원과 일치하면 간단하게 끝날 수 있으나 3,000만 원이 초과되는 상황인지라 채권양수인들이 각각 요구하는 금액에 비례해서 주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대법원은 "채권이 이중으로 양도된 경우의 양수인 상호간의 우열은 통지 또는 승낙에 붙여진 확정일자의 선후에 의하여 결정할 것이 아니라, 채권양도에 대한 채무자의 인식, 즉 확정일자 있는 양도통지가 채무자에게 도달한 일시 또는 확정일자 있는 승낙의 일시의 선후에 의하여 결정하여야 한다(대법원 1994. 4. 26. 선고 93다24223 전원합의체 판결)"고 판시하여 '도달시설'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위 사례에서 임대인은 먼저 채권양도 통지를 한 A회사에게 8,000만 원을 지급하고, 남은 7,000만 원을 B회사에게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채권양도 통지가 같은 날 임대인에게 동시에 도달된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하면 될까? 대법원은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채권양도 통지가 채무자에 동시에 송달되어 그들 상호간에 우열이 없는 경우 그 채권양수인은 모두 채무자에 대하여 완전한 대항력을 갖추었다고 할 것이므로, 그 전액에 대하여 채권양수금의 이행청구를 하고 적법하게 이를 변제받을 수 있고, 채무자로서는 이들 중 누구에게라도 그 채무 전액을 변제하면 다른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도 유효하게 면책되는 것이며, 만약 양수채권액의 합계액이 채무자에 대한 채권액을 초과할 때에는 그들 상호간에는 법률상의 지위가 대등하므로 공평의 원칙상 각 채권액에 안분하여 이를 내부적으로 다시 정산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다. 즉 위 사례에서 임대인은 A회사에게 8,000만 원을 지급하고, 남은 7,000만 원을 B회사에게 지급하거나 또는 B회사에게 1억 원을 지급하고, 남은 5,000만 원을 A회사에게 지급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고, A회사와 B회사는 서로에게 채권액에 따라 정산하면 된다.
한편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수리비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보증금반환채권이 양도되었다면 그 경우에는 어떻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부동산 임대차에 있어서 수수된 보증금은 임대차관계에 따른 임차인의 모든 채무를 담보하는 것으로서 그 피담보채무 상당액은 임대차관계의 종료 후 목적물이 반환될 때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 보증금에서 당연히 공제되고, 임차보증금을 채권양도한 경우에도 채무자인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대항할 수 있는 사유로써 양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이므로 비록 이미 채권양도의 효력이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보증금반환채권은 임대인의 채권이 발생하는 것을 해제조건으로 하는 것이므로 임대인의 채권을 공제한 잔액에 관하여서만 채권양도가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