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아버지의 어깨가 말해주는 것

장휘영 청주시 서원구 건축과 광고물팀장

2025-05-11     이태용 기자
▲ 장휘영 청주시 서원구 건축과 광고물팀장

어릴 적, 나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커다란 손, 듬직한 어깨, 항상 바쁘게 움직이던 발걸음. 그 모든 것이 어린 나에게는 든든한 울타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그토록 커 보였던 아버지의 어깨가 요즘 따라 유난히 작아 보인다. 예전엔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나를 번쩍 안아 올리던 그 어깨였다. 비바람 몰아치던 날에도 말없이 가족을 지켜내던 그 단단한 어깨였다.
그런데 이제는 늘어진 가디건처럼 축 늘어진 어깨가 세월을 이야기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감내한 책임, 포기했던 꿈,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느껴지는 외로움과 불안까지...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요즘 ‘백세시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사람은 더 오래 살게 되었지만, 그만큼 오래 일할 수는 없다. 그 백세시대라는 말이 축복이 아니라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 현실에서 정년은 오히려 더 빨라지고, 준비되지 않은 은퇴는 아버지들을 조용히 밀어낸다. 일터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때로는 가족 안에서도.
한평생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아버지. 이제 그 아버지에게 “수고하셨다”는 말 한마디보다 더 절실한 것은 ‘은퇴 후의 삶’이 비어 있지 않다는 안도감이다.
무언가에 여전히 필요한 사람이라는 존재감, 그리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는 자존감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재취업은 쉽지 않고, 공적연금만으로는 생활이 빠듯하다. 가족은 있지만, 노후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대. 아버지의 어깨가 점점 더 숙여지는 이유이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아버지에게 ‘버팀목’이 되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아버지의 ‘기댈 곳’이 되어야 할 때이다. 정년 이후에도 일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고, 경제적인 지원과 함께 정서적인 연결망도 마련해야 한다. 노후란 ‘나이 들고 쉬는 시기’가 아니라, 존엄하고 의미 있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는 시간임을 이해해야 한다. 단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아버지는 말이 없다. 언제나처럼 묵묵히 오늘도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식탁에 앉아 커피 한잔을 천천히 마신다. 하지만 그 조용한 일상 속에도 말 못 할 무게가 짙게 배어 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우리 가족이 그 어깨의 짐을 조금 나눠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물려받는 삶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도 나는 아버지의 어깨를 바라본다. 조금은 좁아졌지만, 여전히 따뜻한 그 어깨의 짐을 이제는 내가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다. 그것이 우리가 노후를 대하는 자세이기를, 모두의 어깨가 든든해지는 사회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 늦기 전에, 아버지의 어깨에 다시 따뜻한 햇살이 닿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