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농업의 미래, 양성평등에 달려 있다

박원기 충북농업기술원 농촌지도

2025-05-13     김민환 기자
▲ 박원기 농촌지도사

'농업'이나 '농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이들이 논밭의 곡식, 씨앗을 뿌리거나 농기계를 다루는 농부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 장면 속 농업인은 대부분 남성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인식해 온 농업인의 모습은 오랜 시간 남성 중심의 이미지로 굳어져 왔다. 그러나 농업은 원래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일궈 온 산업이다. 경작과 수확은 물론, 가공과 유통, 판매까지 모든 과정에 여성의 손길이 닿아 있다. 농업은 공동체의 역사이며, 그 안에는 남녀의 협력이 본질적으로 포함돼 있다.
하지만 산업화와 조직화의 흐름 속에서 농업은 점차 남성 중심 구조로 고착되었고, 여성은 농업 활동의 실질적 주체임에도 제도적으로는 보조적인 역할로 인식되어 왔다. 2024년 기준 여성은 전체 농업인의 51.1%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공, 체험 기획, 온라인 직거래 등에서 농업의 외연을 확장하는 주체로 활약하고 있다. 그럼에도 2022년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이 발간한 '지표로 보는 양성평등'에 따르면, 여성 농업경영주 비율은 30.3%, 농지 소유율은 28.2%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로 경영과 생산을 주도하면서도 공식 제도에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성 농업인은 농사일 외에도 가사와 돌봄을 병행하는 ‘이중 노동’의 부담을 안고 있다. 특히 농번기에는 근골격계 질환이나 만성 질병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출산·육아 등의 복지 접근성은 낮고, 대형 농기계와 첨단 농업기술 교육 역시 여성에게 불리하게 구성되어 있다. 다른 문제는 여성의 시각이 정책 결정이나 조직 운영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농업의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주요 농업 단체나 공공기관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여성 리더는 드물고, 이로 인해 여성의 시각은 경영과 기술 혁신 과정에서 종종 배제된다. 이는 농업의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제한하는 요소다.
다행히 변화의 바람도 불고 있다. 여성 농업인은 농산물 가공, 로컬푸드 운영, 농촌 관광 등 부가가치 높은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젊은 여성들의 귀농·귀촌도 늘고 있다. 이들의 섬세한 감각과 소통 역량은 농업의 질적 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정부도 여성 농업인을 위한 복지 바우처, 전문 교육 확대 등을 추진 중이며, 생활개선회, 여성 지도자 양성, 여성 농업기계 교육 등 농촌진흥기관 중심의 공동체 활동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복지를 넘어, 조직 구조 개편, 여성의 경영 역량 강화, 정책 결정 과정의 대표성 확대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농촌 사회에 뿌리내린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고,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주체로 협력하며 각자의 강점을 살릴 때, 농업은 더욱 창의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 농업의 미래는 양성평등이라는 건강한 토대 위에서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