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봄의 단상

최명규 서천문화원장

2025-05-13     동양일보
▲ 최명규 서천문화원장

봄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게 했던 봄이 왔다.
겨우내 저수지가에 시린 발을 담그고 서 있던 버드나무도 연초록의 반짝이는 잎을 달고 파스텔톤의 빛을 발산한다. 그 아래 물풀들이 삐죽삐죽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사이를 검정 물닭이 언제 남쪽에서 날아왔는지 쌍쌍이 고갤 끄덕이며 사랑을 나눈다.
흰뺨검둥오리는 조용히 물을 밀어내다가 난봉꾼이 나타났는지 다른 수컷이 남의 암컷을 넘보면 꽥꽥거리며 날개로 물을 치며 경고한다. 봄은 이처럼 소란스럽게 새로운 사랑과 생명을 만들고 나이 먹어 칠십에 이른 늙은이는 작년보다 더욱더 호사스런 봄이 오는 길목의 새 소리와 나무가 움트며 물오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무심히 지나친 소소한 자연의 이치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나의 잔재주를 어찌 그리 크게 생각했는지 내 삶의 자체가 부끄럽다.
겸손해야 한다.
딱새 한 쌍이 처마 위에 올려놓은 화분 안에 둥지를 틀었다. 딱새는 꼭 사람이 사는 근처에 둥지를 튼다. 천적인 뱀과 다람쥐 등을 피하는 길은 천적이 싫어하는 사람 사는 인가라는 걸 오랜 시간이 지나 진화돼온 것이리라.
정원 옆에서 크는 대추나무 가시에 꽂혀 죽은 개구리 사체는 겨울을 지나며 모두 없어졌다. 여름내 개구리며 곤충을 잡아다 마른 육포 저장법을 대대로 전해 내려온 때까치 가족이 눈이 쌓여 배가 고플 때 겨울 먹이로 빼 먹은 것이다.
여름 먹이가 풍부할 때 먹이를 가시에 꿰어 말렸다가 눈 덮여 먹이 구하기 어려울 때 와서 빼어 먹는 그 지혜는 참으로 위대한 진화의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대추나무 가시가 고기를 꿰어 말리기에 적합하다는 걸 어찌 알았을까?
산으로 올라 숲으로 들어가 보면 더 경이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숲 아래서 아직은 큰 나무들 아래에서 살아온 둥글레나 취나물 원추리등은 벌써 잎들을 무성하게 내어 자라고 있다. 참나무나 낙엽송 같은 활엽수가 잎을 무성히 내기 전에 많은 잎을 최대한 펼쳐 햇볕을 간직하려는 의도다.
키 큰 참나무 역시 좀 늦게 잎을 내어 발 아래 세상에 사는 식물들에게 5월까지 풍성한 일조량을 제공 하려는 배려다.
인간은 항상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자신만 못한 자연을 우습게 내려보며 행동한다.
자연은 인간을 어떻게 생각할까. 서로를 배려하지 못하는, 그리고 이익에 아귀다툼하는 초원의 하이에나보다 더한 종류의 짐승으로 생각할 것이다. 배려하지 못하는 짐승!
몇 해 전 우리 집에 작은 애완견을 지인이 줘서 키우게 됐다. 털이 곱슬하게 길어 눈언저리를 자주 깎아주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답답함에 가끔씩 눈 주위를 깎아줘야 하는 수고를 하게 했는데 언제인가부터 밥을 남기고 먹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저녁이면 남은 밥그릇이 아침에 가 보면 말끔히 비워진 게다.
하도 궁금해 저녁에 창 문을 열고 감시하게 됐는데 어둠이 깔리자 뒷산에서 앙증맞은 너구리 새끼가 내려와 거침없이 우리 개(보미) 옆으로 가 반가운 재회를 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콧등이 반질거리고 아직 어려서인지 엉덩이엔 토끼 꼬리처럼 짧은 꽁지를 까닥거리며 밥을 먹고 우리 개와 놀고 있는 것이다.
아침을 먹지 않고 아껴 저녁에 주인 몰래 너구리 새끼에게 밥을 주는 저 배려심.
아 엄청난 충격이었다. 내가 아내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하니 아내는 “남에게 퍼 주는 것까지 주인을 닮은 바보네”하고 흘려 보냈지만 나에게는 한동안 짐승들의 성스러움 배려에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지고 있다. 정치나 사회 전반에 끊임없이 서로를 헐뜯는 계층간 성별, 세대 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타인에 대한 비판과 분노가 빠르고 쉽게 퍼져나간다. 말이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주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친절한 말 한마디는 짧고도 쉬운 것이지만 그 울림은 끝이 없다”는 마더 테레사의 명언처럼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말,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말,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감사하는 말, 바로 따뜻한 말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대지 위에 동, 식물 모두는 존귀하고 인간들보다 우월하다, 모두 머릴 숙이고 자연과 대지에 감사하고 숙연한 봄을 돌아볼 수 있는 통찰하는 사람이 돼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