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우산 이야기
김애자 수필가
내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는 산업단지를 끼고 있는 신도시에 있다. 산을 깎아 세운 곳이라 전망이 좋은 편이다. 또 아파트 정문만 나서면 대형마트에 음식점, 병원까지 고루 들어서 있어 생활하기에 편리하다.
다만 불편한 게 있다면 입주자 대부분이 젊은 층인데 그 속에 80대 노인이 끼어 사는 것 같아 좀 난감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하여 우리 내외는 가능한 출퇴근 시간과 주말엔 외출을 삼간다. 젊은이들에게 불편을 주고 싶지 않아서다. 또 젊은이들 역시 노인들을 봐도 인사를 건네는 이들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아침에 우편함에 꽂혔을 신문을 가지러 갈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젊은이들을 만나지만 그들은 스마트폰에 집중할 뿐 눈길도 건네지 않는 것을 나 또한 예사로 여긴다. 아래층 40개 우편함에 중앙지와 지방지 등 신문이 꽂혀 있는 곳은 우리 집뿐이다.
오늘 아침엔 다섯 시에 장화를 신고 호미를 챙겨 들고 경로당 텃밭으로 나갔다. 아파트 1500세대 중 70대와 80대 실버들이 듬성듬성 섞여 있지만 경로당에 회원으로 가입한 이들은 20명 정도다. 도우미가 두 팀으로 나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점심을 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회원들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도 경로당에 딸린 텃밭에 풀이 우거져 호랑이가 새끼를 쳐 간다고 해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경로당 회장과 남편이 푸성귀를 제철에 맞추어 심지만 회장은 인공심장 박동기를 달고 있어 풀 뽑는 일은 불가능하다. 남편 역시 척추가 굽은 환자라 모종 심는 것만 겨우 도와 줄 뿐이다. 결국 전원생활 20년 경력을 가진 내가 지난해부터 풀 뽑는 일을 맡고 있다.
오늘도 새벽녘에 서둘러 밭으로 나간 건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우북하게 자란 풀을 뽑기 위해서였다. 풀 뽑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압력밥솥에 아침밥을 안쳤다. 그리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현관을 나섰다. 승강기 버튼을 누르고 보니 엘리베이터는 19층에 머물러 있었다. 곧 빨간 불이 층수를 알리며 내려와 15층에 멈추자 문이 열렸다. 먼저 타고 내려오던 40대 초반쯤의 젊은이가 가볍게 목례를 했다. 엘리베이터는 8층에서 또 한 사람을 태웠고, 세 사람이 1층 로비에서 내렸다.
그런데 밖에는 비가 퍼붓고 있었다. 경로당 텃밭에서 돌아올 때 비가 몇 방울씩 떨어지던 걸 깜빡 잊은 나는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다. 난감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자 19층 젊은이가 우산을 펴들고 나의 어깨를 감싸며 어서 나설 것을 재촉했다. 그는 나의 보폭에 맞추어 쓰레기 분리함으로 갔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달린 뚜껑까지 열어주었다. 음식물을 버리고 나는 출근길이 늦을 수 있으니 나 혼자 뛰어가면 된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그는 다시 나의 어깨를 감싸고 아파트 출입문까지 데려다주고서야 주차장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 누군가를 돕는 것은 지식이 아닌 바로 마음이란 걸 생각했다. 마음 바탕이 선하지 않으면 남을 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그 젊은이의 출근길은 내가 보낸 인사와 덕담만으로도 기분이 썩 좋았을 터이다. 나 역시 좋은 이웃을 두었다는 믿음으로 모처럼 가슴이 훈훈하다. 이렇듯 소통과 어울림은 나이의 많고 적음과는 관계없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의 바탕이 된다.
아침을 먹고 청소를 마친 다음 커피 한 잔을 타들고 소파에 앉아 창밖을 내다본다. 빗줄기가 여전히 줄기차다. 넌출진 풀과 나뭇잎들이 빗줄기를 리듬으로 삼아 벌리는 춤사위가 시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