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아내라는 이름의 여자

한만수 시인·소설가

2025-06-30     동양일보
▲ 한만수 시인·소설가

아내라는 말의 어원은 고대 한국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래는 ‘안에 있는 사람’, 즉 '집 안에 있는 여자'를 의미한다. 이는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편이 바깥일을 하고 아내는 집안을 돌보던 역할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영어의 wife는 고대 영어 wīf에서 유래된 단어로, 본래 의미는 단순히 여자 또는 여성을 뜻한다. wīf는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여성 일반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결혼한 여성을 지칭하는 말로 좁혀졌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아내’와 wife는 모두 ‘결혼한 여성’을 의미하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단어에 담긴 사회적 시선은 다르다. ‘아내’는 공간적, 역할적 제약을 전제로 한 이름이라면, wife는 성별 자체를 중심에 둔 명칭에서 시작되어 점차 결혼의 의미를 더한 개념으로 바뀌었다. 전자는 가족 내에서의 위치와 기능에, 후자는 여성 정체성과 관계의 변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에서, 문화와 시대가 언어에 부여한 무게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아내’는 서서히 ‘wife’로 진화한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겪은 수많은 일들과 감정들이 여자를 조금씩 다른 존재로 바꿔 놓는다. 그리고 남편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은 여자가 나이 들수록 남성 호르몬이 증가하고, 남자는 여성 호르몬이 늘어나서 남편들이 아내에게 눌려 산다고 농처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가 나이 들어 집안일에 전념하게 되는 건, 어느 날 갑자기 호르몬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바깥일을 할 힘이 줄고,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바깥세상에서 싸울 필요가 없어진 대신, 가족 곁에 더 오래 머무르게 된 것뿐이다.

아내도, wife도, 남편도 결국 시간 속에서 변해 간다. 그 변화는 누가 더 우위에 있느냐가 아니라,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이해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해 준다는 말과 같다.

가장 바람직한 사회는 서로 존중받는 사회다. 일방적으로 존중(尊重)받기만 원하는 사회는 불균형 사회다. 요즘 세대의 남자들은 결혼을 하면 배우자를 아내의 역할에 묶어 두길 원하지 않는다. 설령 원한다고 해도 아내들은 여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이때 여성도 남편을 남자로 대우해 주면 존중받는 사회가 된다. 하지만 일부 여성들은 자신은 여성으로 살기를 원하면서 남편이 남자로 사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짙다. 남자도 평생을 한 이불 덮고 자는 아내를 여자로 보지 않고 아내의 역할에만 강요하며 책임과 헌신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원리원칙대로 산다면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또, 사람을 측정하는데 있어서 원리원칙을 적용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 기준 없이 살아가면 충돌이 잦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적 규범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적 규범(social norm)이란, 어떤 사회나 집단이 구성원들에게 기대하는 행동 방식이나 기준을 말한다. 이는 법처럼 명문화되어 있지 않지만, 구성원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공유되고 따르게 되는 규칙이다.

예를 들어, 식사 전에 인사하는 것, 어른에게 공손하게 말하는 것,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지 않는 것 등이 사회적 규범이다. 부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어떤 역할을 하고, 아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는 시대마다 다르지만, 그 시대의 규범에 따라 역할이 정의되고 조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