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몽댕이와 반푼이

김묘순 문학평론가

2025-07-01     동양일보
▲김묘순 문학평론가

몽댕이.
닳고 낡은 놋수저를 사용하여 감자를 깎던 도구를 이르는 말이다. 어릴 적 할머니도 어머니도 동네 아주머니도 친구들도 그것을 ‘몽댕이’라 불렀다.

표준어로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몽댕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몽둥이의 방언’ 혹은 ‘먼지의 방언’으로 표기하고 있다. 아마 ‘몽당숟가락’ 정도로 해석하면 좋을 듯한데….

여름 초입이다.
소일거리로 밭두렁 한쪽에 심어두었던 감자를 캐왔다. 장마가 들이닥치기 전에 서둘러 캤다. 감자알이 탁구공만 하거나 메주콩만 하다. 메주콩만 한 것은 졸여 먹는다. 그런데 탁구공만 한 것은 껍질을 벗기기가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칼로 껍질을 깎아내고 나면 남는 속살이 없다. 그렇다고 안 벗기고 먹을 수는 없다. 이렇게 애매한 감자를 보니 우습기도 하다. 그런데 봄부터 땀 흘려 농사지은 노력과 탈 없이 자라준 감자가 기특하기도 하다. 그 감자 사이로 지난 세월이 소환된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학교에서 돌아오면 감자를 깎아야 했다. 그때는 자주색의 길쭉한 감자 농사를 지었었다. 자주감자를 깎으며 하얀 감자를 부러워하였다. 자주감자에 눈이 박혀 도려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몽댕이로 감자를 깎았다. 놋쇠로 된 수저가 길이 났다. 수저 입 부분이 닳아서 반쯤 남고 끝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참 요긴한 도구였다.

이렇게 깎은 감자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 끓였다. 그리고 밀가루 반죽을 하여 방망이로 밀어 칼국수를 만들었다. 감자와 어우러진 칼국수. 뜨거운 칼국수를 머리에 이고 손에는 물 주전자를 들고 콩밭을 메고 있는 어머니에게로 갔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다. 한편 아찔하기도 하다. 뜨거운 칼국수를 머리에 얹었으니 정수리 부분이 온전하였을까. 그리고 한 손에는 물 주전자를 들었으니 또한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가.

참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웃는 모습을 보면 힘들지 않았다. 아니 힘들었는데 힘든 것이, 한꺼번에 소멸되었다고 하는 편이 옳다. 그리고 칭찬을 하며, 어머니는 주린 배를 채우셨다. 콩팥 가장자리에서.

어떻게 그 긴 시간의 다리를 건넜을까. 그 무더위 속에 5리나 되는 콩밭을 걸어갔을까. 빈손으로 걷기도 힘들었을 텐데, 짐을 이고 들고 말이다.

지금은 탁구공만 한 감자를 깎고 칼국수를 밀어 한 끼 먹어보려 해도 엄두가 안 난다. 그때만큼 맛있게 할 줄을 모르는 것인지 하기 싫어 꾀가 나는 것인지….

지금 난, 초등학교 고학년만도 못한 사람으로 반푼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낡고 닳았다는 이유로 밥상에서 물러났던 몽댕이. 삭삭 감자 긁는 소리를 유쾌하게 내주던 몽댕이. 쓰면 쓸수록 더욱 날이 서 제 몫을 당당히 하던 몽댕이.

그러나 낡고 닳은 나는 쓰면 쓸수록 무뎌지기만 한다. 무뎌진 인간은 명료하거나 명쾌한 소리도 못 낸다. 지나온 일을 뒤돌아보며 어떻게 견뎌왔나, 생각만 아득하다.

아하! 나는 몽댕이만도 못하구나.

낡을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날이 서고 끝까지, 쓸모가 있어지던 몽댕이. 그 몽댕이가 오늘 무기력해진 나에게 바짝 다가온다. 놋수저가 닳으면 내동댕이쳐지지 않는다. 다른 소용되는 곳에 길들여 요긴하게 쓰인다. 사람도 이와 같아 늙어도 어느 곳에 긴히 소용되는 일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허튼 생각만 자라서 밤잠을 설친다. 애꿎은 두꺼비 돌에 맞는다고 텔레비전도 억울하게 밤새도록 바쁘다. 청소차 지나는 소리 이미 지났다. 발이 무겁다.

여름은 길다. 이 길어진 여름을 반푼이는 또 어떻게 견뎌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