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사소하여 큰 이야기

하재영 시인

2025-07-07     동양일보
▲ 하재영 시인

모처럼 가족들과 외식을 한 직후 식대를 계산한 아내가 한마디 한다.

“아빠는 식구를 위해 쓰는 것이 짜.”
“….”

은퇴 후 연금생활자로서 아내에게 몇 푼 주고 나머지를 내가 쓰면서 종종 듣는 소리다. 내 지출 경비 중 식구들을 위해 쓰는 외식비는 거의 없다. 나는 식구들을 위해서 이것저것 그래도 돈을 썼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그런 소리를 날린다.

농사에 필요한 비료, 농약뿐만 아니라 차량 유지비, 거기에다가 임플란트 경비, 책을 사는데 돈이 적지 않게 드는데 말이다. 더욱이 아내는 그런 것에는 통 관심이 없다.

사실 월말이 되면 내 통장에 남아 있는 돈이 거의 없는 편이다. 한 달 열심히 돈을 썼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아직은 돈을 쓰면서 돌아다닐 때라고 생각하면서도 목돈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평생 봉급 생활자로서 큰돈을 만진 적은 드물지만 아파트를 팔고, 새 아파트로 입주하고, 주택을 짓고 이사하면서 큰돈은 필요했다. 그때마다 집을 판 돈에 금융권에서 얼마간 융통해서 지금의 내 살림을 꾸려왔다. 물론 그것은 나 혼자의 계획이기보다 역할이 컸던 아내와 합심하여 일군 것이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곰곰 생각해 보면 남을 위해 큰돈을 쓴 적도 없고, 이웃을 위해 소문나도록 기부한 적도 없음을 인식하게 된다.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에서 얼마간 그런 일을 위해 썼을 뿐이다. 그림이나 도자기 한 점 구입하는 데도 신중했고, 여행도 목돈이 들어가는 것은 일정 금액을 모은 후 나머지는 빌려서 쓰고 여행 후 갚곤 했다.

그럼에도 직장 생활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해 밥을 사고, 술을 샀던 기억은 많다. 식구들을 위해 크게 쓴 적이 별로 없기에 ‘짜다’는 아내의 말에 그렇지 않다고 항변거리를 찾지만 결국 수긍하게 된다.

짜다는 말은 우리 생활에서 여러 의미를 갖고 있기에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옷을 짜다.”,“계획을 짜다.” 등의 뜻 외에도 “음식이 짜다.”, “돈을 지출하는데 짜다.” 등과 같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요즘 짜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이면에는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따금 모임 자리에 가면 경제가 안 좋다고 난리다. 당연히 짜게 살아야 할 환경임을 직감하게 된다.

‘짜다’란 말에는 분명 나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 강할 것이다. 본인 스스로 짜게 살고 있다고 해도, 남이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 사람은 짠 사람이 아니다.

해방 전후 태어난 우리 부모 세대는 되게 짜게 살았다. 지출을 줄이고 들어오는 돈의 한계 내에서 알뜰살뜰 살림을 늘리려고 무던히 애를 썼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식들을 교육시켰다. 6.25 전쟁 후 태어난 내 연령대들은 경제적 상승곡선을 그리며 사회 발전과 함께 문화적 혜택도 누리며 그래도 윤택하게 된 세대다.

더운 여름을 보내며 차고, 소금기 있는 음식이 당길 때가 있다.

‘짜다’는 아내의 말에 반박이라도 하듯 7월 하루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 한 끼 사도록 해야겠다. 사소한 것 같은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넘겼다가는 아무래도 가정의 평화가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 아냐.”라는 소리를 아내에게 지청구처럼 듣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