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버퍼링 걸리다
김혜경 시인
햄버거집 문 앞에서 안쪽을 기웃거린다. 줄 서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봐야 한다. 긴 줄로 늘어서 있다면 오늘 햄버거 사기는 글렀기 때문이다.
나는 현금이나 카드를 내밀고 점원에게 주문하는 것이 좋다. 말만 하면 젊은 직원들이 뚝딱 주문을 끝마치고 번호표를 나누어주는 집을 찾아다니는 편이다.
어제도 커피 한 잔 마시려 하는데 뭘 그렇게 보고 눌러야 하는 것이 많은지, 나는 불볕더위에도 따듯한 커피만 마시는데 손가락의 실수로 차가운 커피를 마셔야 했다. 누굴 원망할 수도, 바꿔 달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울며 겨자 먹기가 아니라 울며 얼음 먹기였다.
오늘도 햄버거집에서 키오스크와 눈싸움을 해야 할 판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 꿈지럭거리고 있으면, 뒤에 서 있다가 속이 터진 젊은이가 뭘 꾹꾹 눌러 햄버거 두 개를 주문해 줄지 모른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죄없이 노인들의 미디어를 책임지고 산다. 집에서는 핸드폰을 들고 온라인 쇼핑을 하려는 부모의 주문을 책임져야 하고 밖에 나오면 커피집 키오스크를 무한정 들여다보고 낑낑대는 생면부지 노인들의 미디어 수발을 들어야 한다.
노인들이 생각하는 AI는 반가운 문명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불편하고 두려운 존재이다. 사람들은 두려워만 하지 말고 노인도 배워야 한다고 한다. 말처럼 배우는 일도 쉽지 않고 사용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노인의 버퍼링을 곁에서 친절히 도와주는 젊은이가 많다는 사실이다. 출가한 아이들이 집에 오는 때면 핸드폰으로 사진 찍고 저장하는 법이며 정보를 찾는 법을 가르쳐주고 간다. 배울 때는 이런 신천지를 왜 몰랐을까 눈이 번쩍 뜨이지만, 내일이면 어떻게 하는 건지 몽땅 도루묵이 되고 만다.
요즘은 AI가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만들고 시를 쓰고 수필도 쓴다. 책상머리에서 붓방아를 찧으며 고심 끝에 시 한 편 쓰던 시인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두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세돌이 알파고를 한 번 이겼을 때까지만 해도 AI가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진 않았다. 인간이 제압하고 이길 수 있고 통제할 거라고 믿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통제가 될까 하는 의문이 더 크다.
기계문명이라는 말을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때는 단순히 우리가 힘이 부족하여서 하지 못하는 일을 기계가 대신해 주는 아주 편리한 도구라는 생각만을 했다. 청소기며, 세척기, 도어락, 자동차, 비행기 등등, 우리의 편리에 따라 기계를 부리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인간의 지능을 탑재하고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AI(Artificial Intelligence)라니. 지능이 낮은 나는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AI는 X-레이·CT·MRI 등의 의료 분야, 금융, 주식, 보험, 법률 분야엔 유익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구축한 모양이다. 전쟁이나 힘든 노동도 대신 해주고 방대한 지식을 알려준다는 것은 편리한 일이지만, 나는 두려움이 더 크다. 학창시절에도 나보다 공부를 잘하거나 똑똑한 아이들은 공연히 싫었으니 말이다.
나처럼 겁 많은 인간이 갖는 두려움은 AI가 우리를 해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다. 누구도 명확한 대답을 할 수는 없으리라.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주는 무한한 혜택의 대가로 두려움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두려움과는 상관없이 AI는 기능이 향상될 것이고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혁신에 혁신의 힘으로 미래를 끌어갈 것이다.
나는 언제나 햄버거집 키오스크 앞에서 버퍼링을 멈추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