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소아에게 발생한 만성경막하 혈종

김희섭 효성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2025-07-13     동양일보
▲ 김희섭 효성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어린 유치원생에게 발생한 만성경막하혈종, 방심하면 늦을 수 있다.
최근 한 5세 남자아이가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머리를 부딪힌 후 병원에 내원한 사례가 있었다. 초기에는 단순 두통과 구역, 구토를 호소했지만, 증상이 지속되고 점차 심화되면서 결국 ‘만성 경막하혈종(Chronic Subdural Hematoma)’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게 되었다. 우측 머릿속에 다량의 출혈이 있었고, 출혈이 발생한 지 며칠이 지난 만성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다행히 수술은 비교적 간단하게 우측 머리에 0.5cm 정도의 작은 구멍을 뚫어 가느다란 대롱(카테터)을 넣어 피를 밖으로 배액을 시켜 완치가 될 수 있었다. 이 경우는 겉으로 드러난 외상이 가볍게 보여도, 그 이면에 심각한 신경학적 손상이 잠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뇌는 경막(dura mater), 거미막(arachnoid mater), 연막(pia mater)이라는 세 개의 막으로 싸여 있으며, 경막하혈종은 이 중 경막과 거미막 사이에 혈액이 고이는 상태를 말한다. 보통 외상으로 인해 뇌정맥이 손상되면서 발생하는데, 출혈이 빠르게 진행되면 급성경막하혈종으로, 서서히 축적되면 아급성 혹은 만성 경막하혈종으로 분류된다.
만성 경막하혈종은 성인, 특히 고령층에서 흔히 발생하지만, 소아에서도 드물게 발생한다. 특히 소아의 경우, 증상이 명확하지 않거나 초기 외상이 경미해 보일 수 있어 조기 발견이 어렵다. 이로 인해 치료 시기를 놓쳐 신경학적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다.
유아는 두개골이 아직 완전히 골화되지 않았고, 뇌혈관 역시 성인에 비해 연약하다. 이 때문에 약간의 충격에도 미세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부모나 교사가 이 변화를 감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유치원, 놀이터 등 활동량이 많은 공간에서는 일상적인 부딪힘이 자주 발생하고, 아이 스스로 통증이나 불편함을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워 위험 신호가 간과되기 쉽다.
이번 아이의 경우도 놀이 중 친구와 부딪히며 머리를 다쳤고, 초기에는 멀쩡해 보였고, 가벼운 두통만 호소하여 보건실에 잠간 누워 있다가 귀가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수일간 두통과 구토, 피로감을 반복적으로 호소하면서 보호자가 병원에 데려왔고, 뇌 영상촬영(MRI, CT) 결과 만성 경막하혈종이 발견되었다. 다행히도 수술로 혈종을 제거한 후 회복 중이지만, 적절한 시점에 병원을 찾지 않았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을 수 있다.
소아에서 만성 경막하혈종은 다음과 같은 비특이적인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구토나 식욕부진, 지속적인 졸림, 무기력함, 평소보다 말이 없고 반응이 둔함, 반복적인 두통 호소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 찡그리거나 머리를 만지는 행동), 발작, 실신, 보행 이상 등의 증상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일반 감기나 소화불량으로 오인되기 쉽기 때문에, 머리 외상이 있었던 경우에는 작은 증상이라도 반드시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이번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단순한 놀이 중의 충돌이라도 머리를 부딪혔다면 72시간 이상 아이의 상태를 세심히 관찰해야 한다. 또한 유아교육기관에서는 안전사고 예방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아이들이 부딪히거나 넘어졌을 때 부모에게 즉시 통지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부모 역시 “크게 안 다쳤다”며 안심하기보다는, 두통, 구토, 무기력 등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된다면 반드시 신경외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특히 만성 경막하혈종은 증상이 수일에서 수주 뒤에 나타나므로, 초기 외상 후 한동안은 주의 깊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소아의 외상성 뇌손상은 그 표현이 다양하고 미묘하다. 이번 5세 아이의 사례처럼, 겉으로는 별일 없어 보여도 뇌 내부에서는 조용한 손상이 진행되고 있을 수 있다. 부모와 보호자의 세심한 관심, 의료진의 빠른 판단, 그리고 교육기관의 안전관리 체계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아이들의 건강한 일상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