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천둥소리
배세복 시인
입학식이 있는 3월 초는 겨울만큼 춥다. 요즘은 강당에서 입학식을 하니까 덜 춥지만, 학생들의 옷차림은 그냥 겨울이나 마찬가지다. 아직 성장 중이기에 입학식 날의 학생들은 교복을 크게 맞춰 입고 오는 편이다. 물론 예전처럼 ‘구럭’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손이 조금 덮일 정도의 교복을 입고 온다. 그 모습이 사뭇 귀엽다.
그날도 그랬다. 필자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강당에서 학생들을 기다렸다. 이미 와서 조용히 앉아있는 학생,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주위의 소음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 뒤늦게 도착해서 자기 반을 찾는 학생, 각양각색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필자는 필자가 맡은 학급의 학생을 죽 훑어보았다. 제일 뒤에 앉아있는 한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신장이 다른 학생의 반밖에 안 되었다. 교복도 커서 교복에 푹 묻혀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눈에 봐도 장애를 지닌 학생이었다. 조금 걱정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였다. 그게 그 학생의 첫인상이었다. 그런데 그 학생 주변에는 휠체어가 따로 없었다. 입학식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갈 때에서야 휠체어가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학생은 작은 팔다리를 부지런히 옮기며 걸음을 옮겼다. 키가 큰 무리 속에 묻혀있었지만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입학식 다음 날부터 곧바로 상담했는데, 가장 걱정되는 그 학생부터 상담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걱정으로 시작한 상담은 뭉클함으로 끝나 있었다. 다른 어떤 학생보다도 마음이 건강했고 각오가 다부졌다. 야간자율학습에도 모든 요일에 참석한다고 하였다. 그 학생이 어떤 병명으로 장애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부모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병명을 잊어버렸다. 왜냐하면 그건 단지 그냥 병명이었을 뿐이다.
학기 초에 놀랍게도 그 학생은 학급 분리배출 봉사를 지원하였다. 분리배출 통을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기특하고 예뻤다. 이미 그 학생에게 장애는 말뿐이었다. 친구들은 그 학생의 주변에 모였다. 깔깔거리며 웃고 함께 떠들었다. 1년 동안 필자와 학급 친구들은 그 학생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모두 잊어버렸다.
언어의 특성 중 불연속성이라는 특성이 있다. 자연은 연속적인 특성이 있다면 언어는 연속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낮과 밤이라는 말이 있다면 어디서부터 낮이고 어디까지가 밤인지 정확하지 않은 것이 자연이라는 것이다. 연속적으로 울리는 제각각의 천둥소리를 ‘우르르 쾅쾅’이라고 적는다는 것은 언어의 불연속성을 정확히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장애인’이라는 언어만으로 장애가 있는 자와 장애를 가지지 않은 자를 정확히 나눌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언어 속에 우리의 사고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학생이 2학년이 되어 이젠 담임교사가 아닌데도 자주 그 학생을 마주쳤다. 그 학생은 또 분리배출 봉사를 도맡아 했다. 그 학생을 마주칠 때마다 늘 웃어주었다. 아니 그냥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입학식 때보다 외형상으로 달라진 건 없었다. 키나 몸이 더 커지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는 그 학생이 다른 어떤 학생보다 더 커 보였다. 이제 필자는 ‘장애인’이라는 언어 속에 그 학생을 가두지 않게 되었다. 머릿속에 천둥소리가 크게 울린 것이다. 그 학생에게 전해주고 싶다. 마음이 건강한 자여! 누구보다도 그대는 아름다우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