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한미 관세 협상과 우리의 과제

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2025-08-05     동양일보
▲ 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온 국민을 극한 긴장 속에 몰아넣었던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지난 7월 30일 관세 부과 시한을 불과 이틀 앞두고 극적으로 타결됐다. 당초 미국이 25%로 예고했던 상호관세율을 일본이나 유럽연합과 체결했던 수준과 동일한 15%로 인하하는 데 합의했으며, 한국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 관세 역시 25%에서 15%로 끌어내리는 데 합의했다. 그리고 상호관세율의 인하에 대한 대가로 우리나라는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며, 미국산 자동차와 트럭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국민적 정서임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결과 쌀과 소고기에 대한 추가적인 개방은 없는 것으로 했다.
관세 협상 전체를 보았을 때 우리 정부와 기업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으며, 15% 선을 이끌어냈다는 면에서 ‘성공’까지는 아니지만 ‘선방’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의 국익을 지켜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준 우리 정부와 기업,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해준 모든 분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이번에 체결된 한미 관세 협상의 내용은 공식 체결문서에 서명하기 전 양측이 발표한 요약문이기 때문에 양측의 발표에 미묘한 차이가 있으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한미 관세 협상이 공식적으로 문서로 만들어진 후에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제까지 진행된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 뒤를 이을 각종 협상 자체가 공정한 경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링 위에 올라 쌍방 간 공격하고 방어하는 경기가 아니라 한쪽이 타격을 가하고 상대는 그 타격을 견뎌내는 일방적 경기이며, 이 경기에서의 협상은 그 타격을 얼마나 덜 아프게 하느냐에 대한 줄다리기일 뿐이다. 그러니 덜 얻어맞았다고 해서 성공했다거나 선전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자유무역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2012년 3월에 발효됐었다. 한미 FTA의 체결과정에서 겪었던 진통은 다시 생각하기도 두려울 만큼 심각했다. 그런 진통의 산물이었던 한미FTA도 트럼프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인해 13년 단명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물론 언젠가는 다시 관세가 완화, 철폐되고 자유무역이 대세가 되는 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서 자유무역 기조가 주를 이룰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정책도 관세 드라이브를 포함한 미국우선주의정책이 당분간 지속할 것을 전제로 기획되어야 할 것이다.
상호관세율 15%에 합의했다고 해서 경제에 미치는 관세의 부정적 영향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관세는 장기적으로 수출국과 수입국 경제 모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미국의 관세정책이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사회의 산업과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정확히 분석하고 대비하는 것이 우리 정부와 기업의 무거운 과제가 될 것이다. 또한, 막대한 규모의 대미 투자는 국내 투자에 그에 상응하는 싱크홀을 만들어내니만큼 그 공백을 메꿀만한 적절한 정책을 개발해내는 것 역시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미국의 압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안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미국은 이와 관련하여 우리 측에 상응한 역할을 주문할 것이다. 주한 미군의 비용 부담이나 역할 변화 등 만만치 않은 요구조건을 들고나올 수도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집권기에 북한 김정은과의 담판에 많은 공을 들였다. 비록 당시에는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상 그 투자를 결코 ‘손실처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형태의 북미 간 접촉이 다시 이루어지든 대한민국의 안위가 대한민국을 제외하고 미국과 북한 사이의 협약이 되지 않도록 각별한 외교적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서 미국은 가까운 시일 내에 한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우리의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의연한 자세로 우리의 국익을 당당히 지켜내는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