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장효민 국립한국교통대 교수·디자인학 박사
“퇴임 후 ‘시니어 로컬 크리에이터’로 내 고장 알리는데 힘쓰겠다” “8월 18일 김복진 서거 85주기 로고·엠블럼 만들겠다” 주저없이 나서 ‘로컬이 곧 세계화’ 마그넷 상품 활용한 지역만의 문화상품 만들어야
지난해 7월 국내에서 개봉한 ‘퍼펙트데이즈’라는 제목의 일본 영화가 있다. 주인공인 혼자 사는 중년 남성의 직업은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묵묵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그린 독립 예술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가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등을 연출한 독일 영화계의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의 작품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있어도, ‘2020 도쿄올림픽’을 겨냥해 ‘도쿄 공중화장실을 멋지게 그려달라’는 일본 재단의 의뢰를 받고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치밀하게 기획된 프로젝트의 산물인 이 영화에는 안도 다다오, 이토 도요 등 프리츠커상(1979년 제정된 일명 ‘건축계의 노벨상’) 수상자 4명 등 16명의 저명한 일본 건축가·디자이너가 설계한 공중화장실이 대거 등장한다. 게다가 주인공 야큐쇼 고지가 2년 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이제는 ‘화장실이 관광명소’로 등극했다.
장효민(62) 국립한국교통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 교수는 이를 “화장실을 통해 보여준 ‘문화적 저력’”이라며 “도시 이미지가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됐다”고 말한다.
영화를 본 관람객들은 단순히 “화장실이 예쁘다”는 외관상의 감상을 넘어 ‘내가 살고 있는 공간과 영화 속 사람들의 공간과의 경쟁력, 즉, 삶의 격과 질의 차이를 어느 틈엔가 비교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 속 ‘투명화장실’은 청결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면서도 사람이 들어가 문을 잠그면 불투명해지는 특수유리를 사용했고, 밤이 되면 화장실의 불빛이 방범등 역할을 해 안전성을 강화했다.
전통적인 일본 건축의 처마구조를 이용한 또 다른 화장실은 습도가 높은 일본의 기후를 감안해 처마를 들어 올려 악취가 빨리 환기되도록 하면서, 타원형 돌출 기둥은 비를 피해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이름도 ‘아마야도리’(雨宿り·비를 피해 가는 쉼터)라고 붙였다.
1963년 강원도 출신의 장 교수가 청주대와 동 대학원, 경희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받은 시각디자인 전문가이면서 도시디자인에 더욱 관심을 쏟으며 매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우선 재직 중인 학교가 있는 충주의 구도심 지역인 지현동 옹달샘 시장(옛 남부시장) 활성화와 도시재생뉴딜사업의 총괄기획을 맡아 ‘사과나무 이야기길’ 골목길 활성화사업, QR을 새긴 벽화 조성과 지역 특색 조형물 설치, 창작과 대여를 병행하는 동네목공소와 문화산업 협동조합, 어린이그림책도서관이 들어선 ‘지현문화플랫폼’과 ‘4242 갤러리’, 최초의 사과나무 생산지 상징을 위한 ‘애플아트 뮤지엄’ 등을 통한 ‘지속 가능한 로컬 브랜딩’ 공간 조성의 성공사례를 남겼다.
방학 중에도 쉴 틈은 없다. 3년여 정년을 남긴 그는 바르게살기운동충북도협의회 여성회장 등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동갑내기 아내 박미여(62)씨와 호주 유학 중인 1녀1남 아이들의 응원을 한 몸에 받으며 무심천 변의 작업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중 하나가 ‘마그넷’이다.
마그넷은 작다. 쉽게 말하면 냉장고에 붙여놓은 ‘치맥집’ 홍보물 뒤편에 붙은 자석 소재의 소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작은 자석 위에 우리의 직지·문화유산 등을 품격있게 고안해 필요한 곳에 장착하면 단순한 관광기념품을 넘어 독특한 문화상품이 된다. 종류 또한 철판, 아크릴, 아크릴에폭시, PVC, 석고, 금속, 도자 세라믹 타일, 원목(우드), 유리재질, 가죽, 나전칠기 등 다양한 표면 재질을 활용할 수 있어 제작이 광범위하면서도 용이하다.
그가 전 세계를 다니며 최근 5~6년간 채집한 마그넷 상품만도 1500여종이나 된다. 유리창, 모퉁이 벽, 방문 어디에서나 그것들을 볼 때마다 그곳의 추억을 소환할 수 있다. ‘로컬이 곧 세계화’라는 현대적 트렌드에 가장 적절한 소재이기에 이를 전시하고 공유할 수 있는 ‘마그넷 갤러리’도 만들고자 한다.
교수로서 후학 양성은 기본, 박물관장과 지역상생협력단장을 역임하며 서울, 청주, 호주 등을 오가며 8회의 개인전을 비롯, 조병묵 솟대 명인과의 컬래버 전시를 열기도 했다. <매력적인 도시재생 사인디자인>(2020), <젠스타일 사이니지 디자인>(0225) 등 14권의 저서 출간에 이어 15번째 책도 집필 중이다.
정신없이 분주한 가운데서도 지난해 청주·청원 통합 10주년 엠블럼 제작, 평범한 고딕체였던 초정치유마을 간판서체 정리, 충주문화관광재단, 청주시 활성화재단, 충북업사이클아트협회 이사로 활동하며 자신이 필요한 곳엔 주저없이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특히 취재진과의 인터뷰 중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오는 18일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에서 열리는 ‘김복진 서거 85주기 추모문화제’ 로고와 엠블럼을 기부하겠다”는 장 교수.
“퇴임 후 ‘시니어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지역을 알리고 지역문화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그의 의지가 돋보인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