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묵이여 잘 있거라

정명희 화가

2025-08-11     동양일보
▲ 정명희 화가

대서가 지나고 삼복더위와 입추가 갔다면 이미 여름은 다간 것이다. 그러나 금년 여름은 6월초부터 삶아대던 더위가 광복절을 코앞에 둔 오늘까지 필사적인 기승을 부린다. 대서의 보약은 조치원 복숭아고, 복(伏)달임엔 연산 오골계나 인삼을 넣어 끓인 삼계탕으로도 황송하다.
예부터 복날에 더위를 물리치는 방법으로 고깃국을 끓여 먹으며 이열치열 해왔다. 아마도 영양보충으로 몸을 다스리려는 조상들의 슬기였을 것이다. 이걸 만들기 위해 인정사정없이 개 끌 듯 끌어다 허겁지겁 먹는 걸 두고 ‘쳐 먹는다거나’ ‘쳐 잡수신다’라 비아냥댔을 것이다. 그러나 여름날에 녹두나 도토리로 묵을 만들어 먹던 경우도 꽤나 오래된 풍속이었다.
경부고속도로 북대전 IC 근처가 예전엔 숯을 만들던 숯 골 이었다. 숯을 만드는 참나무가 많아선지 참나무열매인 도토리로 만든 묵밥집이 지금까지 유명하다. 묵을 쑤어 식은 다음에 양념간장을 쳐 먹었기로 보통 ‘묵을 쳐 먹는다’라 말했던 것일까? 그러나 묵밥은 무생채처럼 얇게 채 썬 묵에 김치를 쫑쫑 썰어 올린 후 양념장을 곁드려 낸다. 여기에 식은 보리밥을 말아 먹으면 그 맛이 금상첨화다. 숟가락이나 젓가락 사용이 불편하면 대접 채 들고 마시듯 먹는다. 그러자니 자연 ‘묵을 쳐 먹는다’는 말이 그럴싸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긴 하다.
그림을 그리는 내 경우로 보면 ‘쳐 먹는다’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그림에 매난국죽(梅蘭菊竹) 사군자(四君子)를 그릴 때 그린다고 않고 ‘친 다’라고 한다. 오히려 난초를 그리고 대나무를 그렸다는 게 격이 없어 보인다. 아마도 농경사회의 자연스런 어법에서 온 것이리라. 닭이나 소나 돼지 등 가축을 친 것처럼 그림 그리는 일도 농사짓듯 생각한 뜻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화가의 농사가 산수나 사군자를 치는 것이 바로 농사가 아니고 무엇이랴.
금년 복달음으로 친지들과 이 숯 골 근처에서 묵밥을 나누었는데 더위에 치친 친구들을 위해 내가 우스개소리를 하나 했다. “6.25전쟁 때, 헤밍웨이(1899~1961)가 참전하여 대전전투 중 이곳에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게 맛있던 묵 맛이 못내 그리워 쓴 소설이 ‘묵이여 잘 있거라’란 작품이었다.“며 능청을 부렸던 것이다. 물론 ”무기(武器)여 잘 있거라(1929)“는 1차 대전을 무대로 쓴 그의 대표작중 하나지만, 나는 소리 나는 대로 ‘무기’를 ‘묵’이라 부르며, 찬 기운이 오래가는 음식인 묵에 대한 정중한 이별을 유모어스럽게 둘러댄 것이었다.
헤밍웨이는 전기치료를 받을 만큼 큰 유전적 질병을 이어받은 정신적인 고통을 글쓰기로 달래며 살았다고 한다. 그는 열아홉 살 때 운전병으로 1차 대전에 참전했다. 그 때 본인도 부상을 입었지만 많은 부상자들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을 나중에 ‘무기여 잘 있거라’란 소설에 담은 것이다. 시간과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창작생활을 통해 지신의 고통을 덜어낸 슬기로움의 소산이라 할만하다. 나 또한 폭염을 이겨내는 슬기로 그를 닮으려 노력한 여름이었다.
인생의 허무 속에서 삶과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가는 청년의 이야기인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소설과 연애소설의 한계를 넘어 인간의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원제 “A Fareweil to Arms”의 'Arms'는 무기를 뜻하기도 하고 두 팔을 뜻하기도 한다. 결국 주인공은 무기(전쟁)에 안녕을 고하는 동시에, 사랑하는 여인의 두 팔에도 안녕을 고함으로 삶의 본질과 사랑의 가치를 통감한다는 얘기다. 이 작품으로 헤밍웨이는 미국의 차세대 작가로 부각되었고 결국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됐다.
더위를 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위에 맞서가며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보다 진취적인 삶의 태도가 내일을 성공으로 이끌 첩경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