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먹튀, 배상명령
박재성 변호사
그날은 아침부터 사건 상담과 증인신문 준비로 정신 없이 오전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12시가 되었지만 마무리를 짓고 가면 홀가분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더 기록을 살피고 있었는데 잠시 후 직원분들이 식사를 마치고 들어오셨다. 그새 오후 1시가 된 것이다. 아직 검토해야 할 양이 많이 남아 있고 추가로 서면 정리까지 해야 하는데, 시간은 부족하고 허기는 느껴지는데 맛으로 기분전환과 더불어 전투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음식이 당기는 날이면 으레 그곳에 가서 점심을 해결하곤 한다. 그곳은 50대 후반 내지 60대 초반의 부부가 운영하는 중국음식점인데 우연히 한번 들어갔다가 발견한 맛집이었다. 나를 보고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여사장님에게 해물짬뽕을 주문했다. 매번 갈 때마다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 갈등했지만 이날은 칼칼하고 구수하면서 바지락이 듬뿍 올라간 그 짬뽕을 생각하면서 입장했기에 주문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되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한쪽 벽 선반 위에 올려진 TV를 보고 있었다. 제목도 모르는 드라마였는데 여사장님은 2분 남짓한 시간에 현재까지 진행된 스토리를 요약해 설명해주셨고 잠시 몰입하고 있던 순간 김을 내뿜는 짬뽕이 나왔다. 어떻게 사장님은 짬뽕 한 그릇으로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감동시킬 수 있을까. 숟갈로 국물 한 모금을 들이키고 바지락부터 골라내며 식사를 하던 중 여사장님이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TV를 보다가 며칠 전에 먹튀 사건이 있었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두 사람이 들어와 식사를 하고는 한 사람이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나가더니 다른 한 사람도 어느 순간 은근슬쩍 나가버렸는데 사장님 부부는 한창 바쁜 점심시간이어서 계산을 했겠지 생각하고 확인하지 못했다가 나중에야 계산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셨다고 한다. 최근에 이런 일을 두 번 겪으셨는데 마음이 안 좋다고 하시면서 신고를 해도 돈을 안 주면 소송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러면 소송비용이 더 들지 않냐며 고민을 털어놓으셨다. 나는 그래도 경찰에 꼭 신고하시고 식당 CCTV 영상도 함께 증거자료로 제출하시면 금방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한 가지 팁이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배상명령’이다. 무전취식은 형사상 사기에 해당하는데 고소, 수사, 기소, 재판과 같은 ‘형사절차’는 가해자에 대한 수사권과 형벌권을 발동하는 절차이지 그 피해금액을 대신 받아주는 절차가 아니므로 피해자가 손해를 배상받기 위해서는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그런데 배상명령은 피해자가 따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지 않아도 형사법원이 가해자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할 때 범죄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도록 명령하여 피해자의 경제적인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할 수 있는 제도로서 사기와 같은 재산범죄의 경우에는 그 실효성이 매우 높다. 특히 피해자는 1심 또는 2심 공판의 변론종결시까지 해당 형사사건이 진행 중인 법원에 배상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는데 민사소송과 달리 인지대와 송달료를 납부할 필요가 없고, 법정에 반드시 출석해야 하는 부담도 없어서 간편하게 배상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배상신청이 부적법하거나 이유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각하되고 이 경우 다시 동일한 배상신청을 할 수 없으므로 가능하면 먼저 공소장을 열람·복사하여 거기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피해금액을 바탕으로 배상신청서를 작성하면 인용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배상명령이 기재된 유죄판결문은 그 자체로 집행권원이 되기 때문에 이후 가해자의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도 가능하다. 하지만 배상명령은 민사판결과 같은 기판력이 없어서 가해자가 강제집행의 단계에서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여 배상명령의 효력을 다투면 다시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일실이익과 같은 소극적 손해는 청구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게다가 위자료도 배상신청을 할 수 있는 손해에 포함되지만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의 범위를 명백하게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각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배상명령은 음식점에서 먹튀한 가해자에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유죄판결과 동시에 음식값을 배상받을 수 있는 제도로서 손색이 없기에 이와 비슷한 피해를 입으신 사장님이 계시다면 이 제도를 참고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