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열사병

김희섭 효성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2025-08-13     동양일보
▲ 김희섭 효성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최근 여름철 폭염이 매년 심해지고 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35도 이상을 기록하는 날은 이제 흔하며, 체감온도가 40℃에 육박하는 날도 적지 않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단순히 불쾌감을 주는 수준을 넘어, 심각한 건강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폭염은 인체의 체온 조절 기능을 마비시키고, 급성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열사병(heat stroke)’을 유발한다.
며칠전 응급실로 급하게 한명의 환자가 이송되었다. 서울에 사는 28세 남성 A씨는 집에서 무직으로 지내다가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며 일자리를 구한다고 하더니, 최근 폭염 속에서 지방 건설업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출근 첫날, 오전 4시간의 실외 작업 후 그는 갑작스러운 어지럼증과 구토, 두통을 느꼈다. 단순 탈수라고 생각했지만 증상은 빠르게 악화됐다. 동네 의원을 찾았으나, 의사는 체온과 전신 상태를 확인한 뒤 증상의 심각성을 판단하고 즉시 종합병원 응급실로 갈 것을 권했다.
응급실 도착 시, A씨는 의식이 없었고 체온은 41℃에 달했다. 저혈압과 빠른 심박수, 호흡곤란이 동반되었고, 의료진은 곧바로 열사병을 의심했다. 열사병은 체온이 급격히 상승해 40도 이상이 되면서 중추신경계 이상과 다발성 장기부전이 나타나는 상태다. 치료가 지연되면 뇌 손상, 급성 신부전, 간기능 부전 등이 발생하여,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A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저체온 치료기와 4℃로 냉각한 식염수를 이용한 방광 세척, 정맥 내 수액 공급, 산소치료를 받았다. 적극적인 치료 덕분에 3일째부터 의식이 회복됐고, 5일째에는 신체 기능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후 2주간의 안정 치료를 거쳐 무사히 퇴원했다.
열사병은 단 몇 시간의 고온 노출만으로도 발생할 수 있으며, 초기 증상은 두통, 어지럼증, 메스꺼움 등 비교적 가벼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방치하면 순식간에 체온이 치솟아 장기 손상과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특히 건설업, 농업, 택배, 청소 등 실외 노동자는 폭염에 장시간 노출되기 때문에 위험도가 높다.
폭염의 빈도와 강도는 기후변화로 인해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째, 폭염 시간대인 오전 11시와 오후 4시 사이에는 가급적 야외 작업을 피해야 한다. 부득이하게 작업해야 할 경우 체감온도 33℃ 이상의 폭염에는 2시간 작업 후 20분 이상 휴식 필수이며, 31℃ 이상의 일반적 폭염주의보일 때는 50분 작업 후 10분 휴식, 40분 작업 후 20분 휴식 등 단계별 기준 적용되어야 한다. 이때 물과 이온음료를 번갈아 마셔 수분과 전해질을 보충해야 한다.
둘째, 통풍이 잘되고 밝은 색의 옷을 착용하며, 넓은 챙이 있는 모자나 작업모를 착용해 직사광선을 차단한다.
셋째, 두통, 메스꺼움, 근육경련, 어지럼증과 같은 초기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시원한 곳으로 이동해 체온을 낮추고, 증상이 지속되면 지체 없이 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한다.
A씨는 신속한 응급처치 덕분에 회복할 수 있었지만, 치료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생명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열사병은 결코 ‘참으면 나아지는 병’이 아니다.
앞으로 폭염은 더 잦아지고 강해질 것이다. 개인뿐 아니라 사업주와 사회가 함께 폭염 대응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작업 시간 조정, 폭염경보 시 작업 중단, 그늘막과 냉수 비치 등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건강은 한 번 잃으면 되돌릴 수 없다. 올여름, 단순히 ‘덥다’는 불편을 넘어서, 생명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A씨의 사례는 폭염 속 우리의 경각심을 높이는 경고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