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인터뷰/ 해방둥이 하정임씨

‘해방이 뭔지도 모르면서 해방둥이로 살아온 80년’ 까막눈 아내·실명 남편, ‘두 봉사’가 만들어낸 한 서린 하모니 “이제 겨우 한글 깨우친 무지렁이지만 대한민국 이래서야” 분열ㆍ오염ㆍ패륜 막으려면 나라 이끌 젊은이 교육에 치중해야

2025-08-13     박현진 기자
▲해방둥이 하정임씨

“80년 살다 보니 어째 요즘 우리나라가 이상해요. 너 나 할 것 없이 원수진 것처럼 싸우고 편 가르고 못살게 굴고.. 나는 학교라곤 다녀본 적도 없고 한글도 이제 겨우 띄엄띄엄 읽게 된 무지렁이지만 이러다 다시 남한테 나라를 빼앗기는 건 아닐까 참으로 걱정되네요.”

1945년 태어난 해방둥이는 해방이 뭔지 모른다. 갓난애가 해방이 뭔지 어찌 알까. 그저 주변 어른들이 ‘해방둥이’라고 부르기에 별명이려니 알고 살았고, 나이 들어서야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고생하다가 해방이 된 거구나 생각했다.

 

하정임(80)씨도 그랬다. 보은 회인의 산골동네서 태어나 아버지가 열 살 때 돌아가셨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6남매를 먹여 살리느라 산에서 고사리 같은 걸 캐다가 문의 장, 청주 장에 내다 팔며 끼니를 연명했다.

학교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사방이 막힌 산골에선 6.25전쟁이 터진 줄도 몰랐다. 피난도 가지 않았다. 가끔 어른들 손에 이끌려 산속 동굴에 가서 숨었던 기억만 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데리고 간 외삼촌 집에서 10년을 살았다. 스물셋에, 고교 중퇴한 옆동네 까까머리 총각과 연애결혼했다. 무학의 딸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 아들을 낳아 그런대로 살았다.

나름 행복했다. 하지만 어느 날 알게 된 남편의 외도 이유가 “‘배운 여자’와 살아보고 싶었다”는 충격적인 고백 앞에 ‘말도 안되는 세 사람의 동거’를 시작하며 화병을 키웠다.

하지만 ‘배운 여자’는 남편의 돈을 챙겨 홀연히 사라졌고 그 충격으로 당뇨가 심해진 남편은 급기야 시력을 잃은 채 20년을 살다가 3년 전 세상을 떴다.

까막눈 아내와 시력을 잃은 남편. ‘두 봉사의 공생’은 그야말로 고립이며 세상과의 단절이었다.

하 씨가 현재 3년째 다니고 있는 해봄학교(청주시 평생학습관에서 운영하는 문해학습학교)에 수업을 다니는 일이 팔십 평생 처음 하는 ‘외출’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지난 12일 청주시 평생학습관에서 운영하는 해봄학교에서 수강생들이 문해교육을 받고 있다.
▲18년째 문해교육 수업을 하고 있는 신갑식(가운데) 강사는 수많은 수강생들의 고마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문맹에 한이 맺힌 시어머니를 위해 며느리가 알려준 해봄학교는 그에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준 희망이자 유일한 행복이다. ‘1945년’ 생이라는 주민등록증의 글씨를 처음으로 읽게 된 것도 바로 해봄에 와서였으니까.

한글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가 들리자 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하지만 이제는 몸이 맘 같지 않다. 지난한 세월을 견뎌내느라 심장판막증, 당뇨, 천식 등등 병마를 키웠고 올해만 벌써 두 번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방송을 보니 쓰레기 문제가 큰일이라더라. 나는 그래서 시장에서 물건 싸주는 비닐봉지를 집에 와 깨끗이 씻어 말려 그 장사꾼한테 다시 돌려 준다”며 “나 하나라도 쓰레기를 줄이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하 씨.

 

그는 또 현재 살고 있는 수곡동(청주시 서원구) 집에서 평생학습관까지 편치 않은 몸으로 꼭 버스를 타고 다닌다. 평생 아끼며 산 습관이 몸에 밴 것도 있지만 정류장까지 꽤 긴 거리를 휘적휘적 걸으면서 ‘아끼는 것 없이 번 돈을 즐기는 데 다 쓰는 것 같은 젊은이들’ 걱정을 한다.

“즐겁게 사는 것도 좋지만 뭐든 소중함을 알아야 부모형제나 이웃을 배려할 줄도 알고 미래를 위한 계획도 세울 수 있는 법”이라며 “나라가 있어야 국민도 있는 법, 나라를 이끌어 갈 젊은이를 위한 정책, 그들을 위한 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나라살림에도 한마디 보탠다. “요즘 민생지원금이라고 돈을 주니 이것저것 살 수 있어 좋기는 한데 그러면 나라 빚이 얼마나 쌓이겠냐”며 “그 빚은 또 우리 애들이 다 갚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첩첩산골에서 태어나 질곡 많은 세월을 견디며 배움은커녕 전쟁도, 혁명도, 군사정변도 모르고 살아온 ‘해방둥이 할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소망을 털어놓았다.

“내가 살아온 80년은 힘은 들었지만, 부모자식간에 살생을 하는 막돼먹은 세상은 아녔다. 우리 애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은 모든 나쁜 것, 잘못된 것, 불안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짜 ‘해방된 나라’이길 바란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