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배우고, 한국인으로 자랑스러워지다

반재숙 청주시 감사관 주무관

2025-08-17     이태용 기자
▲ 반재숙 청주시 감사관 주무관

지난 2월 엄마의 칠순을 맞아 3대가 함께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70대 부모님과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한 여행은 가족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부모님의 나이듦과 아이들의 빠른 성장을 되돌아보며 서로의 존재를 더욱 소중히 느끼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자라며 점점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부모님과 우리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를 깊이 새길 수 있었던 시간이어서, 아직도 스페인 여행의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마지막 일정으로 시내 야경 투어를 한 날이었다. 12일간의 자유여행 일정으로 지친 우리에게 마지막 일정은 힘들기도 했지만 여행의 아쉬운 마무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의 한국인 가이드는 열정적이었고, 그의 말은 지금도 마음 깊이 남아 있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일제강점기를 겪고도 독립을 이뤄낸 한국에서 오셨고, 한국인인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독립된 나라’가, 실은 수많은 희생과 고통, 열망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카탈루냐는 스페인 북동부에 위치한 자치 지역으로 자체 언어(카탈루냐어)와 고유한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이곳은 스페인의 GDP의 약 20%를 차지할 만큼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며, ‘스페인 안의 또 다른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뿌리 깊은 지역이다. 2017년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중앙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립 주민투표를 강행했고,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결과는 지도자들의 체포와 망명, 갈등의 장기화였다. 아직도 주말에는 독립에 대한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가이드는 스페인의 문화에 대해 설명하며 이렇게도 말했다.
“요즘 스페인 젊은이들 사이에선 BTS가 정말 인기예요. 거리에서 한국 노래가 나오고, 한국 드라마와 음식, 패션까지 사랑받고 있습니다”
나도 여행하는 동안 거리에서 한국음악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문화강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위상을 현지에서 직접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가 오늘의 자부심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해왔기 때문이다. 카탈루냐의 현실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어떤 자세로 지켜나가고 있는지를.
바르셀로나의 거리에서 마주한 가이드의 한마디 말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가 가진 자부심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역사가 남긴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는 내가 설 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켜낸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삶의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