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일깨운 중원인 중산 안동준 <31>

사대주의 사관에 왜곡된 역사 바로잡기 힘써

2025-08-21     김명기 기자
▲ 2008년 안동준이 고향인 괴산군 감물면 이담리에 세운 원구지원(圓丘之怨). 현재 원구지원에는 단군을 비롯해 200여 성씨의 시조 위패가 모셔져 있고 매년 10월 3일 중산아카데미와 괴산군이 공동 주관하는 개천절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 1・20동지회 회장 맡아 수기집 발간
1・20동지회는 안동준이 국회의원동우회와 함께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단체였다.
1963년 1월 20일 쿠데타 주역 중 한 명인 장경순이 주도해 창립했는데 1944년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됐던 학병 출신들의 모임이다. 1월 20일은 이들이 학병에 끌려간 날이었다.
1970년대까지 1・20동지회에서 안동준의 활동은 서화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걸 제외하면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4년 6대 회장에 선출됐고 한 차례 중임한 후 1998년 다시 10대 회장에 취임했다.
회장으로서 안동준이 주력한 사업은 학병 출신들의 수기집인 <1・20 학병사기>를 간행하고 기념비를 건립하는 일이었다. <1・20 학병사기>는 처음에는 10권을 계획했다가, 원고 수합과 재정 문제 등으로 5권으로 변경했다. 그러다 다시 3권으로 줄여서 1987, 1988, 1989년 각각 1, 2, 3권을 간행했다. 그리고 1998년 안동준이 회장에 재선임됐을 때 마지막 권인 4권을 간행했다.
기념비 역시 1998년 8월 ‘대한조국주권수호일념비’라는 이름으로 혜화동 동성고 교정에 건립됐다. 처음 설립 부지로 추진한 곳은 서대문 독립공원과 천안의 독립기념관, 전쟁기념관 등이었지만 사정이 여의치않아 그렇게 됐다. 동성고는 징집된 학병들이 입대 전 훈련을 받았던 곳이었다.

◆ 민족의 얼 지키는 재야 사학자
안동준이 본격적으로 역사 연구를 시작한 것은 국제관광공사 총재직에서 물러난 뒤였다. 그가 주로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한국 고대사였다. 특히 그 중에서도 고대 한일관계사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는 그가 일본군에 징집되면서 느꼈던 모멸감과 나라 잃은 설움이 너무나 컸던 기억에서 비롯됐다.
그는 1978년 <한족과 고대 일본왕실>(경인문화사), <동이한족오천백년왕통사>(백악문화사)를 출간했으며 임승국과 공저로 <한국고대사관견>(경인문화사)을 간행했다. <한족과 고대 일본왕실>은 일본 고대 왕실의 뿌리가 한반도였음을 논증하는 저서로 아스카(飛鳥) 문화의 주역이 백제인이고 덴무(天武) 천황이 신라계라는 등 파격적인 주장을 담고 있었다.
한국의 사료 뿐 아니라 <일본서기>와 <고사기>, <신찬성씨록>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 책은 1993년 <일본왕가의 뿌리>(이화문화사)로 제목을 바꿔 재간행됐다.
<동이한족오천백년왕통사>와 <한국고대사관견>은 환단고기류의 재야사학의 입장에서 집필된 책들이다.
안동준은 <한국고대사관견>의 서문에서 고대 한반도의 강역이 남북만주는 물론 중원대륙에 걸쳐 있었다고 주장하고, 단군 개국 이래 4300여년의 역사 가운데 찬란했던 3000여년의 상고사는 망각하고 불과 1000여년의 역사 중에서도 치욕적이고 그늘진 면만 강조해 가르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위대한 상고사가 국사에서 숨겨져 있거나 신화로 치부되고 있다며 사대주의와 반도사관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대한민국 역사 세우기에 ‘열정’
저술 활동 외에도 안동준은 1977년부터 한국고전연구회의 회장을 맡아 고전연구강좌(토요강좌)를 주관했다. 한국고전연구회는 한국고전문우회가 그 전신이었다.
한국고전문우회는 임승국이 회장을 지낸 단체로 1975년 국사찾기협의회가 만들어졌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국고전연구회 토요강좌의 강사는 안호상, 문정창, 박시인, 윤치도 등 재야사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인물들이었다.
주제는 ‘민족의 주체성과 화랑의 얼’, ‘단군의 종교와 철학’(이상 안호상), ‘알타이 어족과 우리 민족’, ‘일본 민족과 일본사의 기원’(이상 박시인), ‘영어 구문법에서 본 한문 문형 연구’(임승국), ‘숨은 국사를 발굴한다’(윤치도) 등으로 다양했다. 앞서 소개한 안동준의 저서들은 한국고전연구회논총집으로 발간됐다.
또 1981년에는 정인보, 신채호, 손진태, 이병도 등 저명한 역사학자들의 논문을 모아 총 6권의 <민족문화논총>을 간행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동서문화환경연구회를 창립해 북한 문제 등 현안을 중심으로 금요강좌를 개최했다.
우리민족의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해 힘썼던 그의 활동은 그가 2008년 고향인 괴산군 감물면 이담리에 원구지원(圓丘之怨)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
김명기 기자 demiankk@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