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 잃어버린 성씨, 되찾는 정체성
이수빈 청주시 청원구 민원지적과 주무관
우리 사회에는 주민등록상 이름과 가족관계등록부상 이름이 달라 불편과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두음법칙’ 적용으로 본래 ‘류(柳)’성을 사용하던 이들이 ‘유’로 표기돼 살아가는 경우이다. 이는 단순히 서류상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생활 전반에 깊이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이다.
왜 ‘류’씨가 ‘유’씨가 됐는가? 개인의 이름은 그 사람의 고유한 존재를 특정하는 중요한 표상이자, 인격권의 핵심 요소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며, 여기에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결정하고 온전히 누릴 자기 결정권 또한 포함된다.
과거 우리나라의 국어 맞춤법 규정은 단어 첫머리에 특정 자음이 오는 것을 피하는 두음법칙을 성씨 표기에도 기계적으로 적용해 왔다. 이에 따라 본래 류 발음의 성씨가 가족관계등록부에 유로 기재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국가 행정 시스템이 고유한 성씨를 변경하도록 한 것으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행위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불합리성은 2006년 대법원의 판례를 통해 해소될 기회를 맞았다. 대법원은 “두음법칙을 성씨 표기에 강제 적용하는 것은,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라고 명확히 판시하며, 본래의 한자 음가대로 성씨를 표기하려는 개인의 권리를 인정했다.
이 판례는 ‘유’씨로 잘못 등록된 ‘류’씨 분들이 법적 절차를 통해 본래의 성씨를 되찾을 수 있는 정당한 근거가 마련됐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오류를 수정하는 것을 넘어, 개인의 헌법적 권리를 재확인하고 실현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성씨 정정의 긍정적 영향은 세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먼저 개인의 정체성 확립과 자존감 회복일 것이다. 이름은 개인의 근원이자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본래 성씨를 되찾는 것은 개인에게 깊은 심리적 안정감과 자부심을 선사하며, 잘못된 기록으로 인한 정체성 혼란을 해소하는 데 이바지한다.
실생활의 불편 해소와 행정 효율성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 주민등록증, 여권 등 각종 공식 문서에서 이름 불일치로 발생하는 복잡한 증명 절차와 행정적 오류는 개인에게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요구한다. 성씨 정정은 불필요한 혼란을 해소하고 개인의 사회생활을 더욱 원활하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국가 행정 시스템의 효율성까지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역사·문화적 맥락 보존·계승에 필요하다. 성씨는 단순히 표기를 넘어 한 가문의 역사와 전통, 조상들의 삶이 담겨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성씨 표기 왜곡을 바로잡는 것은 우리 민족 고유한 성씨 문화를 바르게 보존하고 후대에 온전히 물려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사회적 책임이자 공동체의 자산 보호에 해당한다.
‘유’씨를 ‘류’씨로 정정하는 것은 단순한 서류 정정을 넘어, 개개인의 존엄성과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나가는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본래의 이름을 되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정당한 노력에 대한 이해와 지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