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품은 천년고찰 아파트 숲에 묻히나’

청주 도심 속 용화사, 재개발로 '소음·먼지' 신음 국가유산청 문화재위원회 조건부 허가 '정확한 기준' 없어 청주시 "상위법 관리권한 없다"… 사찰측 “실질 보완책 요구”

2025-08-25     박현진 기자
▲ 청주 도심의 천년고찰 용화사가 재개발 공사로 인한 소음과 진동, 비산먼지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 박현진 기자

청주 도심 천년고찰이 대규모 아파트 공사로 인해 홍역을 앓고 있다.

청주시 서원구 무심서로 565에 위치한 용화사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선덕여왕 때 은점선사가 처음 건립했으며, 조선 인조 6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영조 18년(1752) 벽담선사가 다시 짓고 ‘용화사’라 명명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사찰은 1902년 고종의 비인 순빈 엄 씨의 명으로 발견했다는 국가지정(1989년 4월 10일) 보물 985호 석조불상군이 안치돼 있는 문화유적지다.

하지만 현재 이 용화사를 3면으로 둘러싸고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면서 문화재 보존 가치와 수행 공간이 동시에 위협받고 있다.

2024년 2월부터 아파트 2334세대와 근린생활시설 3동을 짓는 사직동 힐스테이트 아파트 재개발공사는 오는 2027년 6월 준공을 목표로 최고 35층, 높이 105.75m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청주 도심 속 천년고찰 사직동 용화사을 둘러싸고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조성되고 있어 현재 사찰 입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문화재보호법상 이 구역에서의 개발행위는 문화재위원회의 현상변경 허가 대상이다.
실제 해당 재개발 사업은 2016년 문화재위원회 건축문화재분과 첫 심의에서 “역사문화경관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부결됐다.

이후 재개발 조합이 설계와 배치를 조정하고 보완 자료를 제출하면서 재심의가 진행됐고, 결국 '30m 이상 이격거리 확보' 조건으로 현상변경 허가를 받았다.

공사가 본격화되면서 용화사는 소음과 진동, 비산먼지, 조망권 훼손, 공사 차량으로 인한 교통 혼잡 피해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에 용화사 측은 지난 12일 청주시에 ‘사직동 3구역 재개발 아파트 공사로 인한 소음 및 피해에 대한 행정명령 요청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내 ‘근로기준법상 8시간을 초과하는 13~14시간 괴음으로 인한 심각한 피해’ 등을 근거로 △작업시간 조정 △소음‧먼지 방지 대책 △타워크레인 작동구간 조정 및 안전조치 강화 △조망 일조권 침해 최소화 방안 △사찰 경계에 안전망 설치 등 7가지의 행정조치를 요구했다.

아울러 시행사인 현대건설 대표이사와 재개발조합장에게도 같은 내용의 항의서를 전달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느 곳에서도 답신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용화사 측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시 관계자는 “국가 지정 보물은 국가유산청 관리 상위법 적용을 받는 문화유산이기에 향토문화유산처럼 지자체 조례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해당 사업은 (국가유산청 산하)문화재위원회 건축문화재분과에서 이미 심의·승인을 거쳐 허가된 사안으로, 시가 별도로 개입할 권한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동양일보 취재 결과, ‘용화사 주변 재개발공사 가결’이 이뤄진 2016년 당시 같은 기간 문화재위원회 심의 회의록에는 △인천 강화 장정리 5층 석탑(보물) 주변 단독주택: 이격거리 175m, 지상 1층 높이 4.96m-‘조건부 가결’ △구례 윤문효공 신도비(보물) 주변 단독주택: 이격거리 303m, 지상 2층 높이 7.8m-‘원안 가결’ 등의 선례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반면 부결사례도 있다. 역시 국보인 △여수 진남관 주변 시설 증축 심의는 ‘이격거리 60m, 지상 4층 높이 20m’의 조건에도 ‘역사환경 저해’라는 이유로 ‘부결’됐다.

이는 ‘30m 이상 이격거리 조건에 35층 105.75m 높이’의 사직동 아파트 건설 허가사항에 비해 상당히 완화되거나 배치된 사안으로, 국가유산청조차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

최호운 한국국가유산지킴이연합회장은 지난해 국가유산 영향검토 부분이 삭제된 '경기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 통과를 두고 “개인 재산권도 지켜야겠지만 국가유산 가치를 보존하려는 최소한의 규제가 사라지는 건 문제”라며 “규제 완화 시 국가유산과 어울리는 건축물의 색채, 형태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지자체가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혜리 도시건축가는 “세계에서 가장 심한 높이 규제를 받는 파리 몽마르뜨 언덕은 그 덕분에 파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랜드마크가 됐다”며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인근 높이규제와 자연경관을 훼손하지 않는 모두의 뷰를 확보하는 등의 공공재로서의 공중공간은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역설했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