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정돈(整頓)하지 않으면 전진(前進)할 수 없다

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2025-09-08     동양일보
▲ 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나라 안팎이 온통 혼돈(混沌)의 연속이다. 우리의 맹방인 미국은 관세를 미끼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경제 전체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으며, 그 반작용으로 중국은 전승절 행사를 기점으로 반미, 반서방 결속을 서두르고 있다. 한미동맹도 북중러 관계도 바야흐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나라 안은 나라 밖보다 더 시끄럽고 더 어지럽다. 어이없는 비상계엄 선포가 탄핵과 파면으로 귀결되었음에도 국민은 아직도 특검 관련 뉴스의 홍수에 시달리고 있다. 이재명정부 집권 4개월에 들어섰음에도 국민의 머릿속에 정책이라고는 달랑 ‘민생회복 소비쿠폰’ 밖에 생각나는 게 없다. 국회를 장악한 거대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을 박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사법부마저 입맛에 맞추려 온갖 무리수를 두고 있다. 한심 무아지경인 제1 야당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 당대표를 선출했고 그 당대표는 연일 독설을 쏟아내며 뒷걸음질 치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 것은 검찰과 사법부를 개혁하겠다고 다수의 횡포를 불사하고 있는 거대 여당이나, 명명백백히 잘못된 과거에 발목이 잡혀있는 제1 야당이나 이 나라의 최대 개혁대상은 정치의 본산인 입법부, 바로 국회라는 사실을 잊고 있거나 잊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 회복을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훼손시켜서는 아니 될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고 그 변화는 우리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초스피드 세상에서 1초라도 뒤진다면 다시 따라잡기에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자동차, 반도체, 조선, 철강 등 이제까지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해줬던 대표적 산업은 전혀 새로운 미래를 마주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술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구조조정과 혁신을 주저한다면 우리는 예측불가의 미래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이, 대학과 연구기관이, 그리고 모든 국민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하고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K-Pop, K-Beauty, K-Culture 모두 정부가 중뿔나게 나서서 숟가락을 얹거나 간섭하지 않았던 분야다.
우리의 당면한 과제는 미국의 관세정책에 대한 정교한 대응방안과 관세정책 이후를 내다보는 미래정책의 수립이다. 트럼프행정부의 관세정책은 단기적으로 미국에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지만, 관세정책 대상국에는 분명히 경제적 손실을 끼친다. 세계 경제 전체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며, 그 여파는 우리 경제에도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트럼프행정부 이후의 미국의 관세정책 변화 가능성도 자세히 분석하고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행정부 이후에도 이익이 있는 한 미국의 관세정책은 유지될 것이며, 미국이 스스로 관세정책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정치권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사분란(一絲不亂)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 엄중한 시기에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정돈(整頓)은 꼭 있어야 한다. 정신없이 흐트러져 있고 그 흐트러짐에 익숙해져 정돈을 지체시키고 어렵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나라 정치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와 타협이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포화 속에서도 전쟁 당사국 간의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진다. 국민의힘을 해산시키겠다는 거대 여당 대표의 엄포나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겠다는 제1 야당 대표의 몽니나 모두 부질없는 독설일 뿐이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독설 잔치를 거둬들이고 자리를 정돈해 나라와 국민이 힘차게 전진(前進)할 수 있는 길을 닦아주어야 한다. 그걸 못하겠다면 정치를 그만두어야 한다.
우리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모두 충청권 정치인임에 주목하고 있다. 정·장 두 대표가 은근과 끈기, 포용과 절충으로 요약되는 충청인의 저력으로 흐트러진 정치를 정돈하여 나라 전체가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리라 굳게 믿는다. 국민은 정장대첩이 아니라 정장대타협을 목놓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