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김희상 미원산골마을빵 대표

정치외교학과 출신 농부 사업가 주민 공생 마을기업으로 우뚝 쌀·밀·사과 등 마을 생산 농산물 위주로 미원산골마을빵 ‘호응’ “농촌을 지키고 농업을 지키는 일이 곧 소멸 위기 해소 대책” 인구 4천 시골마을 브랜드, 서울·경기·울산 등에 4개 분점 추진

2025-09-14     박현진 기자
▲ 김희상 미원산골마을빵 대표

“도시엔 흔해도 시골엔 없는 것이 많습니다. 문화가 그렇고 젊은 사람이 그렇고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그렇습니다. 농촌을 지키고 농업을 지키는 길은 대부분이 농부인 주민들과 수익이 창출되는 마을공동체 사업 추진으로 상생·공생할 수 있도록 하고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만들어 우리 마을로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일입니다.”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미원시내2길 36, 시내버스가 다니고 올갱이 국밥집과 한식뷔페 등이 밀집한 좁은 시장 골목 사이, 옛 농협 건물 1층 동청주살림영농조합법인이 운영하는 카페 ‘잇다’에 유치원생부터 반백의 노인들이 북적인다.

밀과 쌀, 사과, 파, 양파 등 미원면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주재료로 만들어진 ‘미원산골마을빵’을 사고 잠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기 위해서다.

 

14일 오전 11시께 그곳에서 김희상(53·사진) 미원산골마을빵·동청주살림영농조합법인 대표를 만났다.

논에 약을 주고 부랴부랴 오는 길이라고 했다. 영락없는 시골농부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1973년 서울에서 나고 자라 대입 진학을 위해 자취생으로 청주에 둥지를 틀고 청주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화이트칼라다.

그저 고교시절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참교육’ 운동을 보며 사회성을 생각했고 대학 진학 후에는 농촌봉사활동을 하며 자연스레 농업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군대 제대 후 농민회에서 일하며 농촌에 대한 실무를 익혔고 2000년, 당시 농민회장의 권유로 미원면의 빈집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내려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때 나이 스물일곱 살.

하지만 벼농사 600평, 고추농사 300평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이웃집 품앗이나 농한기 도로공사 잡역 등 닥치는 대로 돈벌이를 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점점 더 비어가는 ‘사람들’을 봤다.

옆집 동생이 서울로 떠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통폐합이 논의되는 사이 연로한 어른들은 먼길을 떠났다. 6000이 넘었던 미원면 인구가 4000대로 떨어지는 것을 보며 김 대표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생각했다.

 

▲'미원산골마을빵'과 카페 '잇다' 전경
▲카페 '잇다' 내부 모습
▲14일 오전 11시께 '미원산골마을빵' 전용판매소인 카페 '잇다'에 방문객들이 북적이고 있다.

2018년 귀촌한 40대를 중심으로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옛 미원낭성농협(현. 동청주농협 하나로마트)이 신축이전을 하면서 비게 된 공간을 마을공동체 공간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농협과 임대차계약을 맺어 지역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공간유지를 위해 자체수익사업을 찾던 중 청주시 농업기술센터 ‘특산자원융복합기술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돼 제빵시설을 갖추게 됐다. 마을주민 5명이 청주를 오가며 직접 제빵기술을 배웠고 2021년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갔다.

현재 제빵사 5명, 카페 바리스타 등 3명, 노인일자리 미화담당 3명 등 10대에서 60대 지역주민 11명이 일하고 있고 50명의 조합원이 출자를 하고 있다. 밀 재배면적도 300평에서 9만평으로 늘었다.

‘카페 잇다’는 투박한 시골농부의 손으로 만들어진 ‘건강한 빵’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주민 일자리와 안정적인 농산물판매처로,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마을 주민을 위한 공간 운영을 위해 시작한 미원산골마을빵이 마을을 살리고 활력을 불어넣은 셈이다.

 

김 대표는 청주대 국어국문학과 출신이자 현재 미원면 ‘쌀안지역아동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아내 유숙(53)씨와 2녀 1남의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미원산골마을빵’ 브랜드 확장을 위해 서울, 경기, 울산, 경북 등에 4개 분점 설립을 타진 중이다.

그는 “처음 조합을 설립하고 빵 기술을 배울 때도 여럿이 같이 한 이유가 ‘사유화’를 막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이제 10년 안에 빵도, 농사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뒤로 물러서려 한다”면서도 “더 많은 사람과의 상생을 위해 치유농장 등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고 열정을 놓지 않았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