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르포>"하루 6만원 어치 팔아도 1만원 채 못벌어요"

청주 중앙시장 노점 상인 이춘희씨 "손자 용돈도 못줄판, 이렇게 어려운적 처음"

2025-10-01     박승룡 기자

추석 명절 전통시장 특수는 이젠 옛말이다. 정부의 2차 소비쿠폰 지급 소식에 전통시장은 모처럼 활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높아진 물가에 시민들은 대형마트로 발길을 옮겨 전통시장 상인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그나마 점포를 가진 상인들은 남은 농수산물을 냉장고와 창고 등에 보관하지만, 노점 상인들은 팔지 못하면 내다 버려야 하는 실정이다. 명절을 맞아 노점 상인들의 어려움과 그들의 실상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하루 6만원어치 팔아도 1만원도 채 못 버는데 이제 노점을 접어야 할 것 같아요.”
청주 중앙시장 입구노점에서 농산물을 판매하는 이춘희(76)씨의 푸념이다.
명절을 일주일 앞둔 5일 시장에는 물건을 구매하러 온 손님보다 상인들이 더 많았다.
이 씨는 “30년이 넘도록 노점을 해왔는데 올해처럼 장사가 안되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손주들 용돈 주는 맛에 힘들어도 장사를 해왔는데, 이제는 장사를 접어야 할 때가 온 거 같다”며 힘없이 답했다.
그는 “점포 상인들은 그나마 남은 물건을 보관이라도 하지만, 노점 상인들은 이조차 할 수 없기에 판매하지(과일류) 못하면 모두 버려야 한다”며 “명절을 앞두고 평소보다 많은 물건을 매입했는데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상인들은 전년 명절보다 50% 가까이 매출이 떨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 씨는 “요즘 불경기가 심하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한 줄은 몰랐다”며 “20년 단골손님도 올해는 찾아오지 않았다”며 “반평생을 함께 했던 중앙시장을 이제는 떠나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고 전했다.

◆노점은 사실상 ‘불법’
노점의 문제는 이것 만이 아니다. 사실 도로를 불법으로 점용해 운영하기 때문에 70~80대의 노인들은 단속반이 나오면 늘 도망치기 일쑤다.
노점상인 허(81)모씨는 “단속반이 나오면 처음에는 봐주(계도)는데, 또 단속되면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했다”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앞으로 장사할 길이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치매 걸린 남편 병수 발 때문에 장사를 꼭 해야 한다”며 “하루에 2만원 남짓 버는데 만약 과태료가 부과된다면 하루 장사를 망친거나 다름이 없다”고 덧붙였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관할 해당 구청도 난감하다. 민원이 발생하면 현행법상 현장에 단속반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주 상당구청 이지영 건축팀장은 “하루에 민원이 약 10건 정도 들어오고 있다. 노점상들의 안타까운 상황은 이해하지만, 현행법상 불법이기 때문에 단속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변해가는 ‘명절 장보기 트랜드’
온라인 마트가 인기를 끌면서 30~40대 주부들도 전통시장을 잊은지 오래다. 특히 주부들은 위생상태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주부 김미영(34·서원구)씨는 “시어머니를 따라 몇 차례 전통시장을 찾았지만, 솔직히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구매한 물건을 시어머니 몰래 버린 적도 있다”며 “모든 상품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형마트에 길들여진 주부들은 사실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다”고 했다.
워킹맘인 정미래(45·상당구)씨는 “바쁜 일상 속에 전통시장가서 장을 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퇴근 시간에 맞춰 마트에서 상품을 배달받고 있다”고 했다.
이렇듯 30~40대가 바라보는 전통시장의 평가는 낙제점이다.
고사리 등 나물을 전문적으로 팔고 있는 노점상인 김(73)씨는 “요즘 젊은 손님들은 노인네가 파는 물건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그나마 단골손님이 있어 유지하고 있다”며 “손님이 점점 줄어 들면서 하루에 가지고 나온 나물(약 2kg) 중 팔리는 건 절반 밖에 되질 않는다”고 했다.

◆“전통시장 구조적 변화·자생 노력 필요”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의 트랜드가 바뀐 만큼 전통시장도 강력한 변화의 시점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대한 소비자분석연구원 김석호 박사는 “예전(1980~1990년)에는 동네마다 골목길마다 구멍가게가 하나씩 있었는데, 최근에는 편의점으로 모든 구조가 바뀌었다”며 “이것이 요즘 시대의 트랜드다. 전통시장도 이처럼 바뀌지 못하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자치단체에서 형식상 진행하는 장보기 운동이나 현대화시설 지원금은 안타깝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며 “예산을 들이더라도 연구용역을 통해 배달앱(개발)·상시위생점검·공동 포장용기 등 대형마트 수준의 시스템 구축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승룡 기자